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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이건희&홍라희 미술관’이어야


“기증자명에 ‘홍라희’라는 이름이 추가돼야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기자님 생각은 어떠세요?” 한 페친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한 번도 던져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젖어 살아 그런 건 아니었을까 반성이 일었다.

이건희 회장 사후 상속 미술품 처리가 이슈가 됐을 때 나는 이 코너에서 국가 기부를 권유하며 기존 박물관·미술관에 보내기보다 새로 ‘국립이건희미술관’을 짓자고 제안했다(3월 4일자 ‘이건희미술관’은 어떤가). 그 제안은 현실화됐다.

애초 기증받은 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분산됐지만 정부는 이를 하나로 합쳐 새로 세울 미술관에 소장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7월 초 언론 브리핑에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신축 미술관 이름은 기증 취지를 살려 기증자 이름인 ‘이건희’를 넣을 거라고 밝혔다. 이제 이 이슈는 서울 송현동과 용산으로 압축된 후보 부지의 최종 낙점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원점에서 문제 제기해야 할 새 이슈가 있다. 작명의 문제다. 내 기존 입장을 정정하고자 한다. ‘국립이건희미술관’이 아니라 ‘국립이건희홍라희미술관’으로 지어야 한다고. 사안을 복기해 보면 이 회장 사망에 따른 상속 재산 개념으로 ‘이건희 컬렉션’이란 표현이 등장했고 이것이 ‘이건희미술관’이라는 표현으로 이어진 거 같다. 일방통행식 흐름에서 빠져나와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언어는 이데올로기다. 여성에 관한 남성의 신화들은 자기희생적 여성을 이상화·우상화했다. 아내의 양보 혹은 그림자 역할은 유교 사회 전통에서 미덕으로 여겨졌다. 아내는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 못했다. ‘이건희미술관’이라는 작명에는 그런 이데올로기가 녹아 있다.

‘컬렉터 이건희’ 이미지는 그의 사망 이후 갑자기 부상했다. 이전까지 남편 이건희는 삼성 반도체와 휴대폰 신화, 즉 기업 경영의 대명사였다. 삼성가에서 미술경영의 간판은 아내 홍라희였다. 그는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나왔고 2004년 리움 개관 이후 관장을 지냈다. 그의 전문성은 컬렉션의 격을 높이고 다양화하는 데 기여했다.

부부의 미술품 수집은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부부가 산 첫 컬렉션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공부하는 미술 과외도 둘은 함께 했다. 이 회장이 백자를 선호해 ‘백자 선생’으로 모신 우당 홍기대 선생의 이태원 뒷골목 자택에 갈 때도 함께였다고 한다.

취향에서 남편은 고미술을 선호한 데 반해 아내는 서양현대미술과 한국의 동시대 미술에 기울었다. 삼성이 사이 톰블리, 마크 로스코 등 미국 추상회화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며 세계적 컬렉션을 갖춘 것은 아내 홍라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러면서도 목기 등 민속품을 디자인 관점에서 수집해 삼성가 고미술 컬렉션을 풍부하게 했다고 한 갤러리 대표는 평가했다.

‘이건희미술관’ 이름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는 ‘결재권자는 이건희’였다는 인식이 작용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 부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모두 이혼했을 때 아내에게 각기 수십조원 위자료를 준 것은 가계 경제에서 공동 기여를 인정해서다. 게이츠는 자선단체를 만들었을 때도 아내 이름을 함께 써 ‘빌&멀린다게이츠 재단’이라고 지었다.

리움(창업자 성+뮤지움)에도, 앞으로 생길 ‘이건희미술관’에도 다 가부장의 이름만 있다. 아내 홍라희를 떠올리게 하는 어떤 단어도 없다. 과거의 미덕은 여성이 사회적 명망을 얻는 걸 가로막는 부정적 속성이었음을 지금 우리는 안다. 세상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서 깨어나는 중이다. 여성계를 위해서도 본인이 자신의 이름을 찾아야 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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