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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역사 부정에서 적반하장까지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한국의 8월은 만감이 교차하는 달이다. 그 이유는 8월엔 민족의 가장 큰 축일도 들어 있지만, 민족의 가장 큰 치욕적인 날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며칠 전 기념했던 것처럼, 8월 15일은 1945년 한국이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이다. 그러나 광복절로부터 꼭 1주일째 되는 8월 22일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의 시발이 된 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조약) 불법 조인이 이뤄진 날이고, 다시 꼭 1주일째 되는 8월 29일은 이 조약이 공포된 국치일(國恥日)이다. 8월에 나타나는 이런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양상은 한국 역사를 극적으로 축약해 보여주고, 우리가 어떤 자세로 역사를 대할 것인가를 상기시켜 준다. 더구나 최근 며칠 사이에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나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최근 우연히 8월 29일에 대해 몇 사람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어떤 나이 든 이는 그 의미를 잊어버렸고, 어떤 젊은이는 그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을 보면서 적잖이 당혹감을 느낀 적이 있다. 여하튼 요즘 사회적 화두로 역사가 입에 오르고, 더구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다 보니 과열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한계가 있고 정도가 있는 법.

한국은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는 주제도 많고, 해석도 많고, 그로 인한 논란도 많다. 아마 어느 나라보다도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우리이기에 이런 역사적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대표적인 고통스러운 기억은 식민지배라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식민지배가 그 자체로도 비극적 사건이지만, 이후의 분단과 냉전으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식민지배 등 어떤 특정 역사 사실과 사관을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 짤막한 칼럼이 담아낼 수 있는 분량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어떤 주제가 됐건, 역사 부정이 야기할 수 있는 한 가지 위험한 현상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세계사를 거시적 맥락에서 다루기로 유명한 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대변동(Upheaval)’에서 일본과 독일의 역사에 대한 태도를 비교한 바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일본은 역사 청산의 실패 사례에 가깝고, 반면 독일은 모범적인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대표적인 2가지 범죄에 대해 적극적 자세를 보였다. 첫째, 유대인 문제는 역사 청산을 위한 검사팀에 유대계 독일인인 프리츠 바우어를 임명함으로써 독일인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을 미연에 방지했다. 둘째, 전쟁 피해 문제는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에서 무릎 꿇고 사죄함으로써 이웃 국가 특히 동유럽 국가들과의 화해를 끌어냈고 이런 관계 개선이 독일 통일 과정에서 큰 자산이 됐다. 독일은 역사 청산뿐 아니라 역사 교육에도 적극 나섰다. 그 결과 오늘날 일본과 독일의 양상은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적 이해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지고한 존재인 동시에 아담의 후예란 악하고 죄로 물든 존재다. 따라서 인간은 개인적 회개도 어렵지만, 집단적 역사 반성도 어렵다. 그래서 역사 부정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역사 부정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역사의 연속적인 부정적 전개를 초래한다. 즉 역사 부정은 역사 왜곡을 낳고, 역사 왜곡은 견강부회를 낳고, 견강부회는 적반하장을 낳는다. 한 번 실수하고 주저하고 단호하지 못하면 결국 사실과 해석의 혼란과 파탄을 가져온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피해자가 피해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되고 죄인이 되고 만다. 이와 더불어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로, 승자로 둔갑하고 만다. 이래서야 쓰겠는가. 일본과 독일 중 우리의 선택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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