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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팬들은 한 가족… 인사도 못나누고 떠나 마음 복잡”

13년 인천과 작별 유도훈 감독

유도훈 대구 한국가스공사 감독이 지난 17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 훈련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천=김지훈 기자

유도훈(54) 감독의 카카오톡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코끼리 조각상이다. 그가 13년간 몸담은 KBL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마스코트 역시 코끼리다. 그는 선수단과 해외 전지훈련을 갈 때마다 코끼리 조각상을 샀다고 한다. “코가 축 처져 있는 건 싫어서 항상 코를 번쩍 들고 있는 걸 샀어요. 팀 상징이 코끼리고, 또 소속감이랄까, 의미가 있으니까.”

구단 인수협약식이 있던 지난 6월 9일부로 전자랜드가 아닌 ‘대구 한국가스공사’가 된 유 감독과 선수단은 여전히 전자랜드 홈구장인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예년 같았으면 팬들이 찾아와 훈련을 지켜봤겠지만 코로나19 탓에 그런 기억도 벌써 까마득해졌다. 유 감독과 선수들은 이미 대구에 원룸 등 각자 살 곳을 마련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17일 구단 사무실에서 유 감독과 만났다. 대구로 내려갈 짐을 빼놓아 사무실은 어수선했다. 인천에서의 훈련은 마지막 날인 23일까지 일주일 남아 있었다.

인천에서 보낸 13년

인천 전자랜드의 마지막 홈경기가 된 4월 29일 4강 플레이오프 4차전 승리 뒤 기념 촬영을 하는 선수단. 조효석 기자

4개월 전 마지막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전자랜드의 선전을 기대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전자랜드는 한 수 위 전력으로 평가받던 정규리그 챔피언 전주 KCC를 4강 5차전까지 끌고 가며 마지막까지 분전했다. 마지막 홈경기가 된 4차전 승리 뒤 선수들과 마스코트, 구단 관계자들이 코트에 모여 찍은 당시 승리 기념사진에 유 감독의 모습은 없었다.

유 감독은 “그때는 (기념사진 생각을 하기엔)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면서 웃었다. 구단 매각이 결정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에게는 고민해야 할 게 많았다.

“어떻게 해야 전자랜드로서 한 경기라도 더 치를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챔피언결정전까지 가서 끝을 내고 싶었죠. 그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감독으로서 져야 할 책임이 아닌가 싶었고요.”

고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야 매각 기업이 나타나지 않겠나 하는 마음도 있었죠. 농구인으로서 KBL이 9개 구단으로 줄어들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고. 힘들다는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이긴 한데, 그때는 혼자 고민을 안을 수밖에 없었어요.”

유 감독의 지휘 아래 전자랜드의 농구는 항상 위를 바라봤다. 끝내 정상에 오르지 못할지라도 언제나 그들은 오르막을 열심히 달렸다. 유 감독은 “항상 ‘성장의 농구’를 해야 하는 처지였다”며 “우리 멤버로는 어차피 안 된다고 선을 긋는 게 아니라 그보다 조금이라도 위를 보려고 했다. 6강 전력이라고 하면 목표를 4강으로 잡았고, 4강 전력이라고 하면 우승을 목표로 잡고 선수들을 성장시키려고 했다. 우리 농구는 그랬다”고 설명했다.

현 선수단에서 김낙현 정효근 강상재는 유 감독의 지도로 성장해 대표팀 옷을 입었다. 그는 “(전자랜드) 홍봉철 회장님이 ‘프로농구가 다시 인기를 얻으려면 국내 선수에게 기회를 더 줘서 스타로 키워내야 한다’고 했다. 나도 비싼 선수 데려오기보다 키우겠다고 했다”며 “선수단 식사, 치료 등 지원 관련해서는 저에게 전권을 줬다. 당장 우승을 원하는 팬들도 있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게 프로가 할 일이지만 선수를 성장시키는 과정도 팬들이 좋아해주셨다”고 했다.

“가족과 헤어지는 마음”

17일 훈련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유 감독의 모습. 유 감독과 전자랜드 선수단은 23일 훈련을 마지막으로 인천을 떠난다. 한국농구연맹 제공

유 감독은 감독 생활 대부분을 인천에서 보냈다. 전임 박종천 감독을 이어 감독대행을 맡은 게 2009년,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게 이듬해니 같은 팀을 13년째 이끌었다. 그런 그를 인천 팬들은 열정적으로 지지했다. 10개 프로구단 중 평균관중 수가 3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드물다. 그런 팬들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못한 채 떠나야 하는 유 감독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는 “떠나는 감정을 몇 마디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팬들과 만나 인사하는 자리가 있다면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그마저 하지 못하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인천에는 골수팬들이 많다. 그런 팬들은 그냥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면서 “돈을 내고 표를 샀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건 팬들이 우리 팀에 시간을 할애해서 신경 쓰고 함께 걱정하고 기뻐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좋을 때 같이 기뻐해주고 힘들 때는 같이 힘들어해주는 팬들이 인천에는 참 많았다. 우승을 못한 감독을 구단이 함께 끌고 가준 건 팬들이 이해해주고 좋아해줬기 때문”이라며 고마워했다.

인천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유 감독은 선뜻 말을 찾지 못했다. 겨우 “고맙다, 아쉽다는 말로는 요약이 안 된다”면서 “그간 응원 감사했다고 말하기도 우습고, 그렇다고 계속해서 응원해달라 하기도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관심을 부탁했다.

“그래도 여태 우리는 전자랜드 한 가족이었고, 인천 한 가족이었으니까…. 자식들이 어디 가서 잘하고 있나 못하고 있나 걱정하고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부탁드리기도 죄송하지만.”

인천=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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