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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한전공대, ‘정치공대’ 되지 않으려면

이성규 경제부 차장


한전공대의 정식 명칭은 한국에너지공과대학(KENTECH)이다. 세계 유일의 에너지 특화 연구 대학을 표방하며 내년 3월 문을 열 예정이다. 한전공대 설립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란과 잡음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한전공대 설립을 내세웠고 당선 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구체화했다. 당초 2026년 목표로 추진됐지만 지난 4월 관련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개교가 대선 시기인 내년 3월로 앞당겨졌다. 이 때문에 한전공대를 ‘문재인공대’라며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한전공대에 들어가는 재원이 부담스럽긴 하다. 개교 후 10년간 한전공대 소요 예산은 1조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중 1조원가량을 한국전력공사가 부담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 원가가 높아지면서 한전의 재무 상태는 악화됐다. 지난해 말 누적 부채는 150조원에 육박한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한전공대에 들어가는 돈을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충당한다는 계획도 세워놨다. 전력기금은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에서 3.7%씩 떼어내 모아 놓은 재원이다. 결국 국민 세금이 한전공대에 들어가는 셈이다.

부지 마련 과정에서 논란도 있었다. 전남 나주에 조성되는 한전공대는 건설 대기업 부영 소유의 골프장 부지를 활용할 예정이다. 부영은 앞서 골프장 부지 절반을 무상 기부했다. 그러나 이후 부영은 남은 골프장 부지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주시에 계획안을 제출했다. 야당에서는 아파트 개발로 부영에 돌아가는 수익이 수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이는 또 다른 특혜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전공대가 정치적 산물임은 분명해 보인다. 설립되기까지 여러가지 문제가 도출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한전공대가 문을 열기도 전에 존재 이유가 없는 ‘정치 대학’으로 폄훼되는 것은 옳지 않다. 에너지를 비롯해 취약한 기초과학 분야의 고급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한전공대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국가 경제 발전의 필수적 요소다. 2년 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수출 제한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정부는 이후 일본 의존도가 큰 불화수소 생산의 국산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는 나지 않고 있다. 기초과학 실력은 단기간에 막대한 돈을 들인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패러다임은 급변하고 있다. 기존 석탄과 석유를 통한 화력발전 시대는 저물고 수소에너지, 에너지 신소재 등이 각광받는 에너지 대전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특화 대학 설립은 장기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한전공대가 개교 30년 내에 에너지 분야 세계 10위 수준의 공대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의 독립성 확보다. 한전공대는 카이스트 같은 특수법인 대학으로 교육부 관리를 받지 않는다. 총장이 학생 정원, 입학 자격 및 선발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한전공대가 비판론자들의 우려대로 ‘한전 직원 양성소’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 모두 충분한 지원을 해주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

기초과학 분야는 10을 투자한다고 10의 효과가 즉각 나올 수 없다. 9번을 실패해도 단 1번의 혁신적 성과가 나온다면 그게 향후 우리 경제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몇 년 새 결과물이 없다고 한전공대 연구 성과를 수치적으로 평가하려 할 때 창의적 연구는 이뤄지기 어렵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에만 몰두하는 환경은 지양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도 일본처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고 미국의 구글 같은 기업이 만들어져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그 단초를 한전공대가 만들어줬으면 한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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