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가리사니

[가리사니] “어차피 장애자 올림픽”

조효석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13점을 뒤진 경기, 마지막 4쿼터 종료까지 5분이 남았다. 이쪽을 얕본 상대가 승리를 확신하며 주전을 벤치로 불러들인다. 방심한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며 전의를 불태우는 동료에게 다른 누군가가 말한다. “우리들이 이기건 지건, 세상 사람들은 아무 관심이 없어. 그 증거로 신문을 봐. 휠체어농구가 스포츠난에 실리는 거 봤나?” 뜨겁던 벤치가 일순간 조용해진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차피 장애자 스포츠에 불과해.” 잠시 동안의 침묵 뒤 대답이 돌아온다. “이기고 싶어.”

만화 ‘리얼’을 읽은 건 우연한 계기였다. 지난해 이맘때 국가대표 남자 휠체어농구 선수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중 한 선수가 어릴 적 자신이 거친 ‘로테이션’ 수술 이야기를 꺼냈다. 무릎 절단 뒤에도 운동을 할 수 있게 발목 아래를 거꾸로 돌려 이어 붙이는 수술이다. 그는 만화에도 이 수술을 한 사람이 나온다며 국내에선 아마 자신이 처음일 거라 말했다. 휠체어농구를 취재하러 왔다면 당연히 그 정도는 알고 왔어야 했던 것 같아 내심 부끄러웠다. 돌아오자마자 허둥지둥 책을 읽었다.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1990년대 기록적 베스트셀러인 농구 만화 ‘슬램덩크’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두 작품 분위기는 다르다. 슬램덩크가 봄날의 벚꽃처럼 찬란히 지나가는 승부의 순간을 묘사했다면, 리얼은 장애로 절망과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이 이를 헤쳐 나오려 애쓰는 과정을 흑백화면처럼 담담히 보여준다. 다리가 잘린 육상 유망주, 고교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트럭에 받힌 농구부 에이스, 두 다리로 설 수 없는 프로레슬러와 옆에서 함께 무너져가는 가족의 모습도 담겼다.

의도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작가는 신체적 장애가 일본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등장인물들은 당장 몸을 맘대로 움직이기 어렵다는 점보다는 사회적 추락 탓에 좌절한다. 사회가 신체적 장애에 차별을 가할수록 그들은 더욱 깊이 추락한다. 장애가 있는 한 어떤 노력을 해도 그 차별을 뛰어넘을 수 없음을 알기에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잃는다.

고교 우등생에 농구부 에이스였던 이는 그간 멸시해온 ‘꼴통’이자 ‘E등급’ 비장애인 자퇴생보다 못한 ‘F등급’이 됐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사각의 링 위 최강자이자 악당이던 레슬러는 그렇게 강했던 자신이 이제 ‘사회적 약자’라며 자조한다. 심지어 국가대표 상비군이 된 뒤에도 주인공은 성인 비디오 가게 등 질 낮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더 이상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고 멀쩡한 직장도 잡기 어려우며,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금세 등을 돌린다. 아마 작품의 무대가 일본 아닌 한국이었더라도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스포츠로 그 좌절을 극복하려 한다. 현실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넘기 어려운 차별의 벽과 달리 스포츠에서의 성취는 노력한다면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어서다. 때문에 어쩌면 비장애인보다 몇 배는 혹독할 훈련을 견뎌내며 일반 농구와는 다른 드리블과 슛을 새로 익힌다. 작은 성과를 이뤄내는 순간마다의 성취감이 의욕을 잃었던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다. ‘어차피 장애자 스포츠’라는 비아냥에도 ‘이기고 싶다’는 승부욕에 찬 답이 돌아오는 건 그래서다.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든지 간에 그들 모두는 승부에서라면 누구보다 이기고 싶어 하는 ‘운동선수’다.

24일부터 새로운 축제 패럴림픽이 도쿄에서 열린다. 개막 이튿날 시작할 휠체어농구를 포함해 80여명에 이르는 한국 선수단이 각 종목에서 생애 최고의 무대를 빛내기 위해 땀을 흘린다. 각자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차별과 어려움을 견뎌내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챔피언들이다. 올림픽에 나섰던 선수들 못잖은, 어쩌면 그보다 우렁찬 갈채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다. 멋진 경기를 바라는 스포츠팬 이전에 동료 시민이자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들이 써나갈 일생일대의 드라마를 함께 지켜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조효석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promen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