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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좁은 골목의 젊은 사장님들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집에서 12분 거리의 지하철역까지 걷다 보면 재미난 곳을 지난다. 줄지어 들어선 2층짜리 연립주택과 3층 건물이 건너편의 대단지 아파트를 마주보면서 만들어진 골목이다. 낡은 건물들 앞으로 폭 3m 정도에 불과한 도로와 너비 1m도 채 안 되는 좁다란 인도가 붙어 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의 비좁은 1층에는 복덕방, 미용실, 떡집, 조명가게, 분식집 등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이 길에 20대, 30대 ‘젊은 사장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으로 가게 문을 여는 요일과 시간을 공지하는 빵집이 시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볼 때마다 닫혀 있는 문 앞에서 길게 줄을 선 젊은 남녀들을 보며 이게 무슨 일일까 했다. 뒤이어 그 빵집 옆에 둥지를 튼 케이크 가게는 앉을 공간은 없이 제빵 기계만 가득하다. 이 집은 예약주문만 받는다. 4인용 테이블 하나, 2인용 테이블 하나로 꾸민 와인가게는 특정 요일에 와인강좌를 하고, 고객 취향을 맞춤한 와인을 추천해 준다. 심지어 일주일에 3일을 꼭 쉰다. 골목 초입에 있는 커피가게는 공간의 4분의 3을 로스팅 기계 등이 차지하고 있다. 손님이 앉을 자리는 가게 밖에 놓은 작은 벤치가 전부다. 여기에다 쿠킹클래스를 운영하는 일본 제과학교 출신 주인장의 디저트 가게, 아기자기한 꽃집, 말수 적지만 속 깊은 요리사의 이탈리안 식당이 골목을 장식하고 있다. 길을 지날 때마다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래들이 번듯한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직원, 공무원 같은 직업을 갈망할 때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주택가 낡은 건물을 찾아들었을까. ‘밀려난 사람’ ‘영세한 규모’ ‘과밀화’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올랐다. 한국의 자영업은 포화 상태를 훨씬 넘어섰다고들 한다. 전체 취업자에서 자영업자 비중은 20.2%에 이른다. 25% 언저리를 맴돌다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6월에 떨어진 수치가 이 정도다. 미국의 6%, 일본의 1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5%라는 숫자와 비교하면 체감 수위는 확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경제권이 발전하면서 기업이 성장하면 임금근로자는 증가한다. 여기에 비례해 자영업자 비중은 준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대기업 중심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중견·중소기업은 충분하게 자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일자리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은 자영업이라는 저수지로 모였다.

코로나19 폭풍은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던 자영업을 단숨에 위기로 몰아넣었다. 벼랑 끝에 선 이들이 속출하면서 정부가 ‘자영업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 그동안 무얼 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정부라고 마냥 손가락만 빨고 있지는 않았다. 서비스산업 활성화 방안을 만들어 보고, 자영업 구조조정을 고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자영업, 자영업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치명적 오류가 있다. 자영업자 비중을 낮춰야 한다는 목표와 위태로운 자영업을 손봐야 한다는 당위만 있었지, 어떤 자영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고민은 부족하다. 사실 자영업 비중이 몇 %여야 좋은지 기준은 불분명하다. 30%든, 5%든 경제 시스템 안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있다면 문제없지 않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코로나19는 ‘한국식 자영업’이 자라는 토양이 될 수도 있다. 집 앞 좁은 골목의 작은 가게들처럼.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형성되면 골목은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골목경제를 이끄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새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좁은 골목길의 젊은 사장 중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선택했죠. 이 골목을 바꿔보고 싶어요.”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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