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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의 에듀 서치] 아이에게 공포를 무기로 공부시키던 시대는 끝났다

사진=게티이미지

무엇이 학생을 공부하게 할까요. 기자의 중 고등학교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뒤 첫 수업은 보통 매 맞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들마다 개성 있는 ‘사랑의 매’를 드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학급 평균 점수를 깎아 먹은 아이들에게 1점 당 1대씩 때리는 분, 지난 시험 점수를 기준으로 매의 횟수를 정하는 분 등 다양했습니다. 학급 평균이 크게 떨어지면 연대 책임을 묻기도 했습니다.

당시 선생님들은 엉덩이와 허벅지를 가장 안전한 체벌 부위로 여겼던 듯합니다. 아이들도 나름 방비를 했죠. 시험 잘 본 아이들로부터 체육복을 빌려 입기도 하고 맞을 부위를 얇은 공책으로 감싸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내복을 잔뜩 챙겨 입고 오기도 했습니다. 다만 방비는 적당해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매가 떨어질 때 발생하는 소리와 손으로 전해지는 촉감으로 매의 효과가 적다는 판단이 들면 ‘무장’을 해제시키곤 했습니다.

두 아이의 학부모이면서 교육 관련한 취재 활동을 하다 보니 종종 아이들을 어떻게 공부시킬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어떻게 공부를 했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나름 결론을 내봤는데 두 종류의 공포가 책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 듯합니다. 하나는 체벌입니다. 주변 다수의 아이들이 무서운 선생님 과목은 그래도 공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년이나 학교급이 낮을수록 강한 체벌을 하는 부모를 둔 아이 성적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애정 어린 협박입니다. “나중에 커서 뭐 될래?” “너 공부 안하면 저 사람처럼 된다” 같은 종류입니다. 현실적인 충고이긴 해도 아직 세상을 많이 살아보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공포입니다. 그래서 대개 공부에서 오는 즐거움이란 이런 공포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에서 오는 듯했습니다.

형님이나 그 윗세대 얘기를 들어보면 의무감에 짓눌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다” “‘집안을 일으키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는 얘기들입니다. 일종의 ‘착한 세뇌’입니다. 뒷바라지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희생이 눈에 들어올 나이가 되면 효심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공부가 재미있었다는 부류는 정말 드물었지만 수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두뇌를 타고났고 그래서 어른들로부터 가해지는 여러 유형의 공포와 협박으로부터 큰 고통 없이 벗어날 수 있었으며, 공포와 협박에 시달리는 평범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드는 우월감이나 안도감이 나쁘지 않았다는 고백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죠.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무엇으로 아이들을 책상에 붙들어 놓을 수 있을까요. 엎드려 자는 아이를 어떻게 깨울까요. 소거법이 유용할 듯합니다. 체벌은 사라졌습니다.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체벌은 이제 폭력입니다. 매질로 아이들을 겁박하던 시대로 돌아가긴 어려울 겁니다.

의무감은 어떨까요.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아이들은 아마도 손사래를 치며 도망칠 것입니다. 단군 이래 가장 부유하다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을 호강시켜드리기 위해”란 말은 하품을 유발할 뿐입니다.

미래에 대한 협박은 먹힐까요. 어른들 스스로도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가장 먼저 없어질 직업이 미래학자다”라는 말처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직업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지, 미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학벌이 주는 안온함은 여전할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입니다. 이런 불확실성에서 오는 어른들의 불안감을 아이들이 눈치 채는 건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어른들은 이미 무장 해제됐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도록 도와줄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 좋아하는 공부, 잘 할 수 있는 공부를 되도록 일찍 발견하도록 끊임없이 지적인 자극을 주면서 뭔가 흥미 있는 것을 발견하면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흥미가 바뀌는 경우도 허다할 것입니다. 크게 고생하지 않고 경로를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도 제공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 놓고 무엇이든 몰입할 수 있으니까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최근 발표한 고교학점제 인식도 조사를 보면, 학생들은 학교가 지정하는 과목이 아니라 학생이 선택하는 과목을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54.8%). 학생의 과목 선택권 보장을 위해 학교 밖 전문가들의 수업 참여를 허용해달라는 응답은 무려 81.6%였죠.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은 학교를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설계하도록 돕는 곳’이라고 정의한 응답이 가장 높았습니다(37.8%). 아이들이 학교에 바라는 바는 명확해 보입니다.

교사 단체들을 중심으로 2025년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에 대한 우려가 나옵니다. “교사가 부족하다” “대입 제도와 맞지 않다” “공간이 없다” 등 온당한 지적들입니다. 국가 주도의 커리큘럼에서 탈피해 학생 선택권을 넓히는 패러다임 전환이 시도되는 것이니 교육 전문가 입장에서 3년이란 준비 기간도 부족하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든 차기 정부에서 뭐라 부르든 학생 선택권을 늘리는 일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울 방법은 선생님들도 없어 보입니다. 공포 마케팅이 먹히던 옛날 아이들은 아니니까요.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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