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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가훈의 미래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가훈이라고 하면 ‘정직’ ‘성실’ 같은 단어나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처럼 간결한 문장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고고한 가훈도 있고, ‘아껴야 잘 산다’는 현실적 가훈도 있다. 최근 들은 것 중에는 ‘엄마 말을 잘 듣자’가 기억에 남는다.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그런데 이 같은 슬로건 형식의 가훈은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근대 국민국가의 산물이다. 근대 국민국가는 구성원의 통제와 결집을 위한 슬로건을 필요로 했다. 가정에서는 가훈, 학교에서는 교훈과 급훈, 회사에서는 사훈이 그 역할을 맡았다. 군인이 아침저녁으로 복무신조를 복창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군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가 암암리에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게 만드는 것처럼, 가훈과 급훈 사훈은 내가 조직의 일원이며 조직의 목표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이런 슬로건 형식의 ‘훈’은 일제강점과 군사독재를 거치며 우리 사회 전반에 굳건히 뿌리를 내렸다. 전통적 가훈과는 거리가 멀다.

전통 가훈은 대개 여러 항목으로 구성된다. 책 한 권 분량의 가훈서도 드물지 않다. 인생관, 공부법, 처세술, 가정의례 전반을 폭넓게 다룬다. 내가 죽으면 이렇게 장사 지내고 이렇게 제사 지내라는 유언도 포함한다. 안지추의 ‘안씨가훈’, 주희의 ‘주씨가훈’ 같은 가훈서는 한 가문의 지침서를 넘어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 가훈도 단행본으로 전하는 것이 많다. 하기야 부모가 자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어디 한두 마디이겠는가.

가훈서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제사와 묘소 관리다. 귀신을 믿어서가 아니다. 사대부의 정체성을 지키고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밖의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부모에게 효도할 것, 형제와 우애할 것, 친척과 화목할 것. 친족 네트워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덕목이다. 개인적 덕목으로는 근면, 겸손, 절약, 청렴을 강조한다. 하지 말라는 것도 비슷하다. 도박, 술, 여색, 잡기, 사치, 무속 따위는 멀리하라고 말한다.

열심히 과거 공부해 높은 관직에 오르라거나 부지런히 돈 벌어 부자되라는 말은 조선시대 가훈서에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미 오를 만큼 올랐고 가질 만큼 가졌기 때문이다. 가훈은 성공한 조상이 남긴 것이다. 별 볼 일 없는 조상이 가훈을 남긴들 자손이 귀담아들을 턱이 없다. 이미 가진 것이 많으니, 나아가 얻기보다는 물러나 지키는 쪽을 택한다. 가훈서 내용이 대체로 소극적인 이유다. 과욕은 멸문지화를 초래한다. 그러니 고리타분해 보이는 조선시대 가훈도 당시에는 나름 현실적 처세술이었던 셈이다.

가훈이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산물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가르침을 전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가훈으로 적합한 가르침은 무엇일까. 정직과 성실을 가훈으로 삼기는 망설여진다. 정직하면 손해 보기 십상이고, 우직한 성실보다는 기회를 포착해 재빠르게 움직이는 순발력이 중요해 보인다.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는 마당에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차라리 일찌감치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빚지지 말고 도박하지 말라는 가훈도 시대에 뒤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가능한 한 많은 빚을 내서 도박 같은 투자를 감행하지 않으면 내 집 마련조차 요원하다. 월급만으로는 답이 없다.

시대를 초월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싶지만, 조선시대 가훈은 오늘날의 각박한 현실에 통하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고 자녀에게 교활한 처세술을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을 솔직히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가르침이 될지도 모르겠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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