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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다음 대통령이 답해야 할 질문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이 세상의 삶에서 행복하기란 참으로 어렵구나.”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쓴 철학 단편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열린책들)에 나오는 구절이다. 요즘처럼 이 말을 실감할 때가 없다. 코로나19 이후 지난 1년8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는가. 하루하루 성실히, 열심히, 꾸준히 쌓아 올린 모든 삶이 무너졌다.

‘저녁 없는 삶’을 강요당한 서민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고통으로 신음하는데, 그 와중에 세를 불린 플랫폼 사업자는 축배를 올리면서 포악한 갑질을 거듭한다. 학교에 가지 못해서 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우애와 협동을 배우지 못한 채 자라는 중이고, 빈부 격차가 학업 격차로 나타나는 ‘사다리 걷어차기’가 현실이 됐다. 여성들과 청년들은 감염병 재난이 돌봄의 재난이자 실업의 재난임을 나날이 실감하고, 감염의 공포 탓에 외면당한 약자들은 우울과 고독 속에서 고립돼 죽어간다.

부자들이 불어난 재산에 놀라면서 재난을 내심 좋아하는 사이에 가난한 이들은 폭등한 집값과 치솟는 물가로 인해 빚으로 연명하고 있다. 혁신성장이 소수의 배만 불리는 ‘고통 성장’이 됐는데도, 정부는 선진국 숫자놀음에 취해 ‘나 몰라라’ 하면서 아무런 실질 대책 없이 ‘감염된 삶’의 실상을 외면한다.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는, 아직 초반임을 고려해도,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딘가 얼이 빠져 있는 느낌이다. 슬프게도 소수의 소셜미디어 팬덤에 포획당해서 아침 드라마보다 못한 저열한 화젯거리를 즐기는 중이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에서 ‘입 바르게’ 소리 내고 ‘예쁜 삶’을 자랑하는 이들은 대부분 먹고살 걱정 없는 유한한 중·상층이다. 현실의 삶이 힘든 이들은 정작 자랑할 일이 없어 ‘소셜’하지 못하고, 생계에 틈이 없어 ‘소셜’할 수 없다. 정치가 소셜 극장의 대사들을 시민 전체의 여론으로 착각하면 삶의 실상은 외면당한다. 어려운 삶을 챙기는 이들이 극히 드무니, “한국의 삶에서 행복하기란 참으로 어렵구나” 하는 한탄이 절로 쏟아질 지경이다. 나라가 이토록 부유한데도 좋은 삶은 점점 멀어만 보인다.

해마다 ‘한국의 논점’(북바이북)이라는 책을 편집한다. 한 해 동안 우리 삶에서 돌출된 쟁점을 돌아보고, 각계 전문가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책이다. 며칠 전 이 책의 편집을 위해 한 해의 논점들을 살피면서 ‘20대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이라는 큰 주제를 고르고 질문 목록을 하나씩 늘어놓아 보았다.

코로나19 등 감염병 방역대책은 무엇인가, 심화하는 빈부 격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무너진 서민 경제와 부동산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청년실업 및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실현할 방법은 무엇인가, 플랫폼 독점과 갑질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수도권 집중과 지방 붕괴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미·중 갈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남북 평화를 이룩할 방안은 무엇인가, 난민 수용이나 빈국 지원 같은 국제사회의 요구에 관한 입장은 무엇인가,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짜뉴스 문제의 해답인가, 여성 혐오와 소수자 차별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등이다.

정치가 행복을 생산하는 공장이 되려면, 재료로 소셜미디어 극장에서 상영 중인 말초적 관심사를 태워선 안 된다. 우리 곁에는 고통받는 이가 넘치고, 우리 삶에는 해결할 문제가 널렸다. 후보의 사생활을 뒤적이고 행동거지를 감시하고 말실수를 적발해, 이를 조롱하고 낄낄대는 사이에, 우리 사회에 쌓인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지고, 절망한 이들은 고통 속에서 파멸과 죽음에 처한다. 내년 중반부터 시민 전체를 대표해 해결사로 살겠다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약자의 편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고통은 커져만 가고 해결은 급하니 우리에게는 ‘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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