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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성평등 직장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20대 대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유력 주자들이 내놓을 여성 정책이다. 선거 때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성별 임금 격차나 고위직 여성 진출 비율이 도마 위에 올랐고 처방도 여기에 집중됐다. 문재인정부도 30%의 여성 장관과 성평등 임금공시제 등을 공약했지만 ‘페미니스트 대통령’다운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30%가 넘어 26년째 꼴등이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하는 여성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9년째 붙박이 최하위다. 경제 활동이 활발할 연령대 여성의 20%, 150만명 정도가 평균 8년여 경력단절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심각한 고용 문제이자 경제 문제다. 고용상의 성 격차는 대부분 경력단절 때문이다. 이를 줄이면 10%의 추가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국제기구 평가도 과장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성별 임금 격차 축소와 고위직 여성 진출에 관한 공약이 빠지진 않겠지만 정책 차별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는 흔히 말해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이고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난 4년 동안 벌어졌던 미투(MeToo) 운동이나 팬데믹으로 인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고용에서의 성평등 문제에 주목하면 좋을 것이다. 그동안의 성평등 논의에서는 약자인 여성의 권리 보호라는 관점이 강했다면 앞으로는 남녀 모두를 위한 변화라는 시각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 여러 사례로 확인되듯이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과 성폭력은 직장의 평화를 깨뜨리고 여러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남녀 공통의 문제로 커졌다. 또한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절감했듯이 사회적 돌봄 서비스가 중단되면 남성의 직장 생활도 타격을 받는다. 여성 고용이 더 큰 타격을 입었지만 남녀 모두 돌봄과 함께하는 워킹 라이프의 고난을 겪어야 했다.

직장에서의 성적 괴롭힘은 오래된 문제지만 2018년 이후의 미투 운동이 게임체인저가 됐다. 사회 곳곳에 은폐돼 있던 권력형 성폭력이 폭로되고 각 분야 지도층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사회적 배제와 법적 단죄의 무대에 섰다. 가해자의 몰락에 관심이 쏠렸지만 피해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일상이 파괴되고 조직이 유린됐다. 그러나 그 충격에 상응하는 사회적 각성이나 성 차별적 제도와 관행을 뜯어고치자는 문화혁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뜬금없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방은 이런 나태함의 업보인 셈이다. 여권이 신장된 미국에서도 유력 대선 주자였던 뉴욕 주지사의 성폭력 중독이 오랫동안 은폐돼 왔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여러 사람이 일자리와 인생을 걸어야 했다. 후임 주지사는 은폐에 가담했던 직원 여러 명의 해고를 예고했다.

이렇게 사건화하지는 않더라도 직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형태의 성적 괴롭힘은 여성의 원만한 직장 생활을 위협한다. 201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기 직장에서 성희롱이나 성폭력 피해를 본 근로자 비율이 42.5%나 됐다. 이 중에서 경력단절까지 생각한 사람이 22.7%, 이직을 고민한 경우가 28.3%에 달했다. 이를 한 방에 해결할 묘책은 없지만 그나마 현실적인 해법이 노동행정을 강화하는 것이다. 노동위원회 산하에 고용공정위원회를 두고 고용노동부에도 전담 근로감독관을 두겠다는 공약은 돋보이는 구체적 해법이다. 그러나 노동행정은 최근 군에서 잇달아 벌어지는 성폭력과 은폐에 대해 손을 쓸 수 없다. 또한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이나 파견·용역 근로와 같은 노동행정의 사각지대도 있다. 미국처럼 독립적인 고용평등위원회의 설치도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고용에서의 성평등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이슈가 돌봄 노동의 사회화 문제다. 돌봄은 그 자체가 필수적 사회서비스이자 다른 사람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다. 20대 남녀의 고용률은 비슷하지만 30, 40대에 20% 포인트까지 격차가 나는 이유는 주로 모성보호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경력단절 때문이다. 대기업의 육아휴직 활용 비율은 42.7%이지만 중소기업은 12% 안팎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이나 특고 종사자는 꿈도 못 꾼다. 돌봄 서비스를 공공 서비스로 대폭 확대하고 유연 근무 형태를 확대해 일과 생활을 병행하게 해야 한다. 공보육을 확대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시간을 오후 4시까지 연장하며 돌봄 교실도 오후 7시30분까지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이런 요구에 맞는 처방이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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