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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글을 쓴다는 것

정진영 대기자 겸 종교국장


삼십 수년을 글로 밥을 먹었다. 기자로 시작해 차장, 부장, 부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국장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는 주된 일이었다. 취재기자 때는 사실 관계를 전달하는 기사를 썼고, 취재 현장을 떠나 데스크가 된 후엔 칼럼을 맡았다. 여태 쓴 기사와 칼럼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수만 장쯤 된다. 내 또래 신문기자들의 평균적인 노동의 무게다. 모든 언론사가 종합미디어 플랫폼으로 변신하는 과정에 있으니 글의 힘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신문사 콘텐츠의 원천이 글이라는 사실은 진리다.

내 글쓰기를 규정짓는 단어는 부끄러움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수치심과 구별되는 부끄러움은 자신을 향해 고민하고 반성하는 성찰이다. 칼럼을 작성할 때마다 부족함을 느꼈다. 쓸 때나 퇴고하는 과정은 물론 글을 마무리하고도 찜찜했다. 논설위원 때 마감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여 함께 사설과 칼럼을 정독하면 내 글이 숙제 검사를 받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출고하기 전 열 번 정도 프린트해서 읽어보며 손을 보고 또 수정해도 만족한 상태로 내 보낸 경우는 드물었다. 내 글을 한 번도 SNS라든지 외부에 스스로 노출시킨 적이 없다. 간혹 누가 ‘잘 읽었다’며 반응을 보이면 고마우면서 면구스러웠다. 기자의 칼럼은 사회적 산물인데 조응하는 내용을 담았나 숙고했다.

칼럼을 집필하면서 원칙을 세웠다.우선 하나 마나 한 말을 쓰나 마나 한 글로 엮지 말자는 것이었다. 좋은 칼럼은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리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괜찮다거나, 이게 문제지만 저게 좋은 건 아니다는 투는 경계했다. 칼럼은 반대편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논쟁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물론 명쾌한 논리와 합리적 근거, 적절한 예시, 충분한 반론 등이 담겨야 한다. 날만 세우면 횡포를 넘어 폭력과 마찬가지다. 다툼을 부르는 글이 아닌 온기와 향기 나는 칼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류는 어지간해서 잘 쓰기 어렵다. 글로 감동을 준다는 건 내 수준에선 쉽지 않다고 봤다.

클리셰를 줄이고 전형적인 표현은 피하자는 것도 글쓰기 기준이었다. 같은 어미로 끝나는 문장을 줄이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다. 형용사 수식을 삼가는 것은 초년 기자 때부터 선배들에게 배웠다. ‘그러나, 그리고, 하지만’ 등의 접속부사를 안 쓰는 게 좋다는 건 상식이라 여겼다. 그러나 ‘셀프 기준’을 내가 잘 지키지 못했다. 특히 종교국장이 된 이후에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걸 삼갈 수밖에 없었다. 교회는 공격과 방어의 영역이 아니라 중재와 화평의 마당이다 보니 글에 칼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교계의 주장이 내 생각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자리가 갖는 한계가 칼럼의 소재를 제한했다. 종교국장이 윤석열과 이재명, 집값 앙등, 백신 수급 관계를 다룰 수는 없었다.

한때는 신문마다 기다려지는 칼럼이 있었다. 지금은 눈길 가는 칼럼니스트가 안 보인다. ‘조중동’의 글은 대충 결론이 정해져 있다. 온갖 문장으로 치장해도 결국은 반문재인이다. 읽을 맛이 안 난다. 다수의 다른 신문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파적이긴 비슷하다. 불편부당의 중도를 표방하는 글은 대체로 심심하다. 독자의 수준은 프리미어리그급인데 나를 포함한 기자들의 실력은 조기축구회 정도라면 지나친 자학일까.

좋은 글은 못 쓰지만 나이가 들면서 좋은 글을 고르는 눈은 갖게 됐다고 자부한다.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사람을 다듬어 낸다는 명제도 되뇌인다. 아내는 “앞으로 퇴직하면 글을 쓰고 책을 내보라”고 한다. 남편이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잘 쓰는 줄 오해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힘들고, 무엇보다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정진영 대기자 겸 종교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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