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내일을열며

[내일을 열며] 정치인 상장폐지 사유서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정치판이 투기가 판치는 주식시장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지난번 대선의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은 시세조종 행위에, 요즘 인천 등지의 선거무효소송에서 제기된 4·15 총선 부정선거 의혹이 맞는다면 주가조작 의혹에 각각 비견할 만하다.

실적보다 고평가된 종목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듯 대선 주자,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나 장관, 청와대 수석 등 정무직 인사들도 능력과 자질보다 겉으로 보이는 타이틀이나 평판이 우선시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다 상장폐지 수준으로 추락하는 순간을 맞이하는데 요즘엔 부동산 투기 등 사적 이익에 매달려 반칙을 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재인정부 차기 대선 주자로 유력했던 조국 서울대 교수(전 법무부 장관) 딸 입시비리 의혹은 주식시장으로 치면 회계문서 허위작성과 다름없다고 봐야 한다.

문제의 근원은 십중팔구 ‘가족 문제’로 수렴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해 주목받았던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부친의 농지 투기 의혹에 대해 책임을 지고 25일 의원직 사퇴와 대선 출마 포기 선언까지 하게 된 것도 본인의 의도 여부를 떠나 결과적으로 가족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옥고를 치렀던 것도 박근혜정부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에게 불법으로 말을 사 준 데서 비롯됐다.

27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가족 특혜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청문회는 금융 정책보다는 자녀들의 위장전입 전력, 장남의 인턴 경력과 관련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특히 장남은 지난해 2∼3월 5주간 고모부가 회장인 한국투자증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213만원을 받아 ‘고모부 찬스’를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청와대 측이 임명을 강행하며 가족 특혜 등 개인사를 업무 자질과는 별개로 봐 달라고 주장하는 건 아닌지 께름칙하다. 공직자가 이해충돌 상황에 놓이게 되면 제대로 된 정책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자질과 관련이 없다는 건 억지다. 고 후보자가 위원장에 임명되더라도 증권 관련 업무에서 제척되는 것도 같은 차원이다. 공무원 등에게 퇴임 후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나의 이익을 희생하고 공공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 대한 대가다.

미국에서 박사후 연구 과정에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딸이 코로나19 관련 논문 제1공동저자로 등재됐다는 뉴스가 조국씨 딸의 고교 시절 논문 등재와 비교되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가족 트라우마에 빠져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이유는 뭘까. 고전평론가 고미숙 작가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관련 평론을 하며 강의한 내용이 떠오른다. 그는 “가족은 사랑이 아니고 애착 관계라는 핵가족 사회의 특징을 제대로 짚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애착은 소유의 무한 증식을 위한 것으로 핵가족이 자본과 결탁했다”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대사에서 보듯 등장인물들은 꿈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치밀한 계획으로 경쟁자를 하나씩 밟아 정상으로 간다. 사기치고 모함해서 죽이기까지 하는데 윤리적 자각이 없이 본성을 잃어버렸다”며 “아이들을 애착의 과잉으로부터 해방시켜 본성이 회복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준석 대표 등 당 지도부의 사퇴 만류를 뿌리친 윤희숙 의원의 한마디가 가슴에 와닿는다. 그는 “우리나라는 보통의 국민보다 못한 도덕성과 자질을 가진 정치인들을 국민이 그냥 포기하고 용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처럼 당장 손절도 못하고 4~5년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는 유권자들을 향한 일침인 셈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