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문학 전집 읽기, 고팠던 일을 채웠다”

[책과 길] 에세이집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펴낸 김정선

김정선 작가가 지난 19일 자신의 거주지 인근에 있는 대전 유성구 버찌책방에서 새 책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사인회를 가진 후 잠시 쉬고 있다. 버찌책방 제공

1년 2개월째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에서 책만 읽는 사람이 있다. 50대 중반의 남성 김정선씨 얘기다. 매일 소파에 누워 그가 읽고 있는 건 세계 문학 전집이다. 9개월 만에 100권(작품 수로는 70편)을 읽었고, 읽은 책들을 기록한 에세이집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포도밭)를 냈다.

“동생이 돌아가고 나서 남은 짐 정리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중년이 되어 삶에서 밀려난 우리는 패배자일까, 자문해 보기도 하고.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가 1952년에 펴낸 소설 ‘노인과 바다’를 펼쳤다.”

김씨의 세계 문학 전집 읽기는 지난해 6월 ‘노인과 바다’로 시작됐다.

“일어나면 아침 해먹고, 하루에 여섯 번 정도 나가서 20∼30분씩 동네를 걷는다. 나머지 시간은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 물론 TV도 보고 밥도 먹고 게으름도 핀다. 보통 사흘에 한 권씩 읽는 것 같다.”

지난 23일 통화에서 김씨는 자신의 일상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대전으로 이사한 뒤 소일거리 삼아 세계 문학 전집 읽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20년 넘게 책 교정·교열 일을 했다. 어머니 간병도 십수 년간 했다. 우울증과 시력 문제가 줄곧 괴롭혔고, 2년 전부터는 몸에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상 증세도 나타났다. 결국 지난해 일을 모두 중단했고, 서울 살이를 고집할 이유가 없겠다 싶어 대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건강 문제 때문이긴 하지만 일에서 해방된 게 처음이었다. 이런 시간이 또 언제 나한테 주어질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일을 다시 하게 되더라도 일단은 나한테 주어진 이 시간을 누려보자, 그러면서 바로 꿈꿔온 일에 착수했다.”


세계 문학 전집을 쌓아놓고 한 권씩 읽어 나가는 일. 그것은 그에게 “한번쯤 내게도 일어나길 바라는 일”이었고 “죽기 전에 언젠가는, 하고 바라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세계 문학 전집일까. 그는 “의미가 있는 독서인지는 저도 모르겠다”면서 “다만 지금 안 읽으면 죽기 전까지 기회가 없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고 얘기했다. 또 “우리 세대에게 세계 문학 전집이란 어릴 때부터 읽어야 된다고 못이 박히게 들은 책이고, 교양의 상징이었다. 어쩌면 그 권위에 짓눌린 세대라고 볼 수도 있다”라고 했다.

김씨는 세계 문학 작품들을 다수 교정·교열하기도 했다. 특히 문학과지성사의 ‘대산세계문학총서’에는 그의 손길이 많이 묻어있다. 그는 “교정·교열자로 읽는 것은 내 입장에서 읽는 게 아니다. 평균 독자를 상정하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읽고 확인해야 한다. 책에 흥미를 느끼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뭔가 놓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라며 “그래서 더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시간이) 고팠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게 된 것도 작업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다. “책상에 앉아서 읽으면 자꾸 일하던 게 생각이 난다. 일하는 것 같아서 흥미도 떨어진다. 그런데 누워서 읽으면 재미있게 빠져든다.”

그는 특정 출판사의 전집을 택해서 완독하는 게 아니라 그때 그때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는다. 민음사 전집도 읽고, 펭귄클래식도 읽고, 열린책들 세계문학도 읽는 식이다. 그는 “2000년대 들어 여러 출판사들이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과 최신 한글로 번역한, 질 좋은 세계 문학 전집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면서 “새로운 번역본으로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작품을 읽는 것과 같은 경험을 준다”고 말했다.

또 “학창 시절 읽었던 작품을 중년이 되어 다시 읽으니까 느낌이 많이 다르다”면서 “어려서는 작품 전체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는데 나이가 드니까 인물이나 이야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더 많아졌다. 작품을 거리를 두고 보게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세계 문학 전집 읽기를 하면서 그는 건강도 회복하고 있다. 우울증 약도 거의 끊었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벗어나서 정말 오랜만에 조용히 혼자 지내게 됐고, 매일 2시간씩 걷고, 매일 책을 읽었다”며 “책 읽기가 없었다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글쓰기 책 분야의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최근 10만부를 돌파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비롯해 ‘동사의 맛’ ‘열 문장 쓰는 법’ 등을 냈다. 그의 에세이집 ‘오후 네 시의 풍경’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도 담담하면서도 사려깊은 문체로 호평을 받았다.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도 단순한 독서일기가 아니다. 책 이야기와 이 책을 읽어가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가 섞여서 훨씬 흥미롭게 읽힌다.

김씨의 독서일기는 앞으로 3권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2권은 내년 여름쯤 나온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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