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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사람의 말머리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예전에 함께 일하던 사람에게 묘한 언어 습관이 있었다. 그것은 모든 말을 ‘아니, 그게 아니라’로 시작하는 버릇이었다. 이 말은 누군가의 말에 반박하는 데에도 쓰였지만 상당수의 경우 앞선 대사와 비슷한 내용을 말하는 데에 쓰였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요즘 여름이 점점 더워지는 것 같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온난화가 심해지는 거죠.”

이런 말에 거슬림을 느끼다 보면 ‘왜 사사건건 내 말에 토를 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고 이따금은 ‘제 말도 그 말인데요?’ 하고 반박하게 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깨닫는 것은 상대는 별 생각 없이 그 구문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스팸문자 앞에 (광고)라는 말머리가 딸려오는 것처럼. 어쩌면 말하는 사람은 본인의 습관을 자각조차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근래 온라인 방송에서 활동할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일을 마치면 내가 참여한 방송을 점검하며 다시 듣거나 본다. 그러다 발견한 나의 말버릇은 ‘약간’이었다. 나는 온갖 곳에 ‘약간’을 붙여대고 있었다. ‘이 카피는 약간 도발적인 부분이 있죠’ ‘저는 그때 약간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 ‘요즘 이런 게 약간 유행인 느낌?’ 같은 말을 상당히 많이 쓰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약간’을 많이 쓰지? 스스로 궁리하다 깨달은 것은 내가 유보적인 태도나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고 싶을 때 저 말을 많이 쓴다는 사실이었다. ‘이 카피는 도발적이죠’보다 ‘이 카피는 약간 도발적인 부분이 있죠’가 빠져나갈 여지가 많지 않은가.

물론 모든 자리에서 주관을 뽐내기보다 애매한 태도를 가지는 게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 그런 태도가 어울리는 자리도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창작하는 사람은 일정 기간은 ‘센스’로 표현되는 섬세한 감각이나 예리한 통찰로 먹고살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입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점점 세계관이나 철학, 자신만의 주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함에 따라 나는 ‘약간’을 약간씩 덜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곁에는 ‘솔직히’를 많이 쓰는 사람도 있다. 그리 솔직할 필요까지 없는 이야기나, 신변잡기에 관한 스몰토크를 할 적에도 ‘솔직히’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솔직히 오늘 날씨 진짜 좋지 않나요?’ ‘솔직히 이 갈비탕 진국이네요’ ‘솔직한 말로 요즘 우리 회사가 일이 참 많죠’ 같은 말들 틈에서 나는 생각했다. 매사를 고백하듯 절절하게 말하는 사람이구나! 실은 그저 입버릇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는 ‘진심으로’의 다른 말로 ‘솔직히’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지인은 술에 취하면 ‘옳지, 옳지’를 즐겨 썼다. 그가 이 말을 쓰기 시작하면 그의 취기가 상당함을 의미했는데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껄껄 웃었다. 함께 취해가는 중이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한 병 더 시킬까?” “옳지, 옳지. 시켜야지.” “어머, 옆 테이블 춤춘다!” “옳지, 옳지! 잘한다!” 누군가 무슨 의견을 내도 ‘옳지’라고 말하고 누군가 무슨 행동을 해도 ‘옳지, 옳지’라고 말하는 무한 긍정의 태도, 그것은 ‘아니 그게 아니라’의 정반대에 있는 언어일지 모른다.

이 즐거운 언어 습관을 보며, 차마 따라할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어르신이나 회사 동료에게 ‘옳지, 옳지’ 하기란 힘든 일이므로) 나 역시 타인 의견에 뒤이어 내 의견을 말할 적에 우리 입장이 같다면 ‘옳지’에 가깝게 운을 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보다는 ‘그렇죠, 제가 보기에도’나 ‘맞네, 내 생각에도’라고 말하는 쪽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혹여 상대에게 반대하는 말을 하더라도 ‘네,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이라고 운을 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쓰는 말은 그 사람만의 말머리가 돼 이미지를 만드니까, 나는 내 이미지가 늘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옳지’라고 하는 사람에 가깝길 원하니까 말이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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