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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2009년 사면과 2021년 가석방

김현길 사회부 차장


평창이 세 번째 도전에 나선 2011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직전 있었던 일이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한 총회인 만큼 많은 국내외 기자들이 총회 장소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을 찾았다. 당시 자크 로게 IOC 위원장 첫 인터뷰가 밤늦게 끝나고 한국 기자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려 할 때였다. 외신 기자 몇 명이 버스로 와 태워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현지 치안이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늦은 시간이라 숙소로 돌아갈 방법이 막막했던 것이다. 허락을 얻은 외신 기자들은 버스에 올랐고 그중 한 명이 이렇게 외쳤다. “땡큐 평창, 땡큐 삼성.”

외신 기자가 평창과 삼성을 함께 언급할 정도로 평창의 유치전은 삼성의 유치전으로도 비쳤다. 이는 2009년 12월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원 포인트’ 사면의 목적으로 내세운 것이 올림픽 유치였던 것과 무관치 않다. 단독 사면 자체가 드문 상황에서 경제인으론 첫 사례일 정도로 극히 이례적인 판단이었다. 그만큼 법치주의를 무너뜨린 특혜라는 비판도 거셌다. 사면 관련 일문일답을 진행한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의 말은 당시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유치 실패 시 특별사면 자체가 비판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 그는 “표현이 어떨지 몰라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고 해야 하나. 결국 국익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국가적 관점에서 사면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국익을 표방한 처벌의 예외는 지난 9일 이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발표에서 되풀이됐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국가적 경제 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 부회장이 대상에 포함됐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 부회장이 풀려난 지난 13일 박수현 국민소통수석 브리핑에서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도 많다”며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국민들께서도 이해해주시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사면은 아니지만, 쉽게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특혜에 가깝다. 이 부회장처럼 형기의 70%를 못 채운 상황에서 가석방 대상에 포함된 이가 1%도 안 된다는 건 교정통계연보나 이를 인용한 여러 보도에서 잘 드러난다. 더구나 추가로 재판도 받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이 국민 여론과 법무부의 특별한 혜택을 받은 셈이 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석방 발표 이후 정부 태도는 관련 설명을 충분히 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가석방 발표 당일 박 장관은 발표문만 낭독했고, 법무부 대변인은 질의응답 없이 설명만 하고 끝냈다. 대신 청와대나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은 반복해서 관찰된다. 박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 부회장 가석방과 관련해 “청와대에 보고한 바 없다”고 답했다. 이철희 정무수석도 24일 공개된 SBS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에게 프리핸드(재량권)가 주어져 있다면 다른 결정을 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009년 12월 이 회장에 대한 예외적 사면에 또 다른 배경이 있다는 의혹은 2018년 검찰 수사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스 미국 소송비를 삼성전자가 대납한 혐의는 이 전 대통령의 기소로 이어졌고,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사면 발표 당시만 해도 국익으로 포장됐던 일이다. 해당 수사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이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다. 가까이에서 과정을 지켜봤다면 보다 구체적인 배경 설명과 솔직하게 이해를 구하는 모습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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