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가리사니

[가리사니]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심희정 온라인뉴스부 기자


볼 때마다 마음이 덜컹하는 TV 광고가 있다. “너 요즘 주식해?” “아니” “그럼 부동산?” “아니” “코인?” “아니” “그럼 투잡하냐?” “아니” “요즘 세상에 뭘 믿고?”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아니”라고 답한 이들은 음악보다 더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자막에는 성공한 벤처기업의 대표 직함이 뜬다. 아, 이 사람들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럼 나는?’ 어깨가 축 처진다.

요즘처럼 온갖 투자 이야기가 전 국민의 관심사인 적이 있었던가 싶다. 국내 주식부터 해외 주식, 공모주 청약, 코인, 부동산까지 누구를 만나도 투자와 관련된 소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눌 수 있는 대화거리가 된다. 어떤 종목이 요즘 뜬다더라, ‘청약 로또’ 신청했느냐, 빚내서 투자해야 현명한 거라더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투자 이야기에 불안이 몽글몽글 샘솟는다. 지인의 지인은 ‘영끌’해 산 부동산으로 1년 만에 시세차익 수억원을 벌었다더라, 몇 달 전 당첨된 공모주가 ‘따상’해 쏠쏠하다더라. 그러고 나면 또 드는 생각. ‘그럼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투자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불확실한 미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셋집은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2년 뒤에 무사히 갱신할 수 있을지 모르고, 내년 월급은 물가상승분만큼이라도 오를지 불투명하다. 자영업자는 눈앞이 더 깜깜하다. 끝이 보이는 것 같던 코로나19 사태는 변이 바이러스로 변곡점을 맞았고, 영업시간은 또 단축됐다. 매출이 인건비나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차라리 문을 닫는 점포도 늘어간다. 여기서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을 때 상황은 기어코 더 나빠지고야 만다.

결국에는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 조금이라도 아껴 쓸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렇게 맞닥뜨린 결과가 장밋빛이라면 참 좋을 텐데, 현실은 만만치 않다. 소액으로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은 P2P(개인 간 금융) 업체들은 원금 반환도 제대로 못한 채 줄폐업했고,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상품권을 할인 판매했던 ‘머지포인트’ 운영업체는 사용처를 대폭 축소하면서 대규모 환불 사태를 빚었다. 피해자 대부분은 20, 30대였다. 이들은 “밥값이 아까워 한 푼이라도 줄이려 했다”며 씁쓸해했다.

동시에 맞닥뜨리는 소식은 하필 이런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거래 내역을 전수조사해보니 투기나 세금 탈루 의혹을 받은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12명에 달했다. 두 달 전 같은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12명이 적발됐다. 부동산 명의신탁, 업무상 비밀 이용, 편법 증여 등으로 의원 본인이나 가족이 정당하지 않은 이득을 취해왔다고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서 시작된 조사는 국회의원도 다를 게 없었다는 서글픈 결론을 내보이고 말았다. 아, 역시 전부 다 계획이 있었다. 이들은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고 있었다.

이쯤 되면 로또 당첨 확률만큼의 운에 기대거나, 국회의원 같은 고위공직자가 되는 것 외에는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이 없어 보인다. 확실한 건 지금뿐이다. 나중 같은 건 감히 꿈꾸려야 꿈꿀 수가 없다. 온전히 오늘을 누리며 사는 것만이 불확실한 세상에 맞서는 길이다.

다만 절망과 동시에 어떤 확신도 든다. 제 몫의 할 일을 하고, 적당한 저축과 소비를 하고, 여가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면 확실한 미래는 아니더라도 만족스러운 현재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여기서 더 나아가 충실한 오늘만큼의 미래가 보장되면 그만한 희망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정이다. 정치인들이 입맛대로 갖다 써서 많이 빛이 바랜 단어긴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공정의 가치를 믿는다. 운이 따르지 않더라도, 고위공직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평범한 미래. 이런 세상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게, 또 그런 기대가 충족되는 게 건강한 사회가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심희정 온라인뉴스부 기자 simcit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