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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날치기 지상주의, 견제 방법이 없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법학)


언론중재법을 놓고 여야가 일촉즉발 대치 상황에 있다. 이미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원장의 표결 강행으로 야당 의원 퇴장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가결됐다. 여론 추이를 보는 듯하지만 8월 말 종결 의지는 확고부동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언론재갈법’ 비난에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입법을 강행할 태세다. 그러나 민주당 대선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인 이상민 의원 등 중진들과 일부 대선 후보 그리고 친여 성향 언론들까지도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카드는 가짜뉴스 등 언론의 역기능을 명분으로 권위적 집권 세력이 충분히 꺼내들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 아니면 도’인 우리 정치판에서 과연 이 제도가 적합할 것인가는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특히 사실상 날치기로 입법 강행을 하면서 평생 야당만 할 것이냐고 했던 송영길 여당 대표의 발언은 이 법이 정권수호법임을 자인한 셈이다. 야당은 필리버스터와 위헌 소송 제기를 외치지만 불과 얼마 전 ‘4+1 공직선거법’을 놓고 여야 간에 벌어진 패스트트랙·살라미전술과 필리버스터의 긴장 관계를 기억한다면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날치기 지상국가’가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이재명 여당 대선 후보가 추가경정예산안을 놓고 “민생에 필요한 것은 과감히 날치기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게 현실이다. 날치기도 합법적 입법 절차 유형의 하나라는 그릇된 인식이 여실히 드러난다. 법학자로서 날치기가 범람하는데도 이를 막을 장치가 마땅히 없다는 것에 절망한다. 170여석 거대 여당을 가진 현 정부에서 더욱 빈번하게 날치기가 자행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과연 우리 현실에서 날치기 입법에 대한 제도적 및 물리적 견제와 개선은 가능할 것인가. 입법 절차 하자의 위법성, 날치기로 통과시킨 입법의 유효성, 날치기 강행에 대한 방어 행위의 허용성 문제가 그 핵심이다. 앞의 두 개는 헌법재판의 문제이고 마지막 것은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문제이다. 어느 하나에서라도 날치기 입법의 위헌·위법성을 실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그 견제가 가능하겠지만, 결론은 회의적이다.

첫째, 입법 절차 하자의 위법 여부에 있어 헌법재판소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다툴 수 있는 현행 제도로는 권한쟁의심판뿐인데, 헌재 출범 후 지난 33년간 날치기 입법 관련 사건은 대부분 기각됐다. 또한 신문법안·방송법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등 몇몇 사건에서 야당 의원들의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법률안 가결·선포 행위는 적법하다며 날치기 강행 측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권한쟁의심판으로는 날치기 법안의 유효성을 막을 방법이 없다.

둘째, 날치기 통과 법안의 위헌 판단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시행된 날치기 법률로 형성된 수많은 ‘완성된 사실들’로 인해 그에 대한 위헌 심판은 헌법불합치 내지 입법 촉구 결정이다. 그 개정 재량권을 날치기를 자행했던 국회에 다시 맡기는 것을 뜻한다. 이런 판단을 한 헌재를 비난하지만, 입법자들이 딱 그만큼만 하도록 만들어 뒀으니 마냥 헌재를 비난할 수도 없다.

셋째, 날치기에 대한 물리적 방어 행위도 불가능하다.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형사처벌 대상이 돼 이를 제어할 수 있는 행위는 극히 제한적이다. 선진화법은 사실상 ‘다수당 폭주 허용법’으로 기능하고 있어 야당은 국회 로텐더홀에서 피켓 구호나 외칠 뿐 속수무책이다.

날치기 국회는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입법 열차에 다름 아니다. 날치기는 바로 통법부(通法府)만 거치면 된다는 형식적 법치주의 사고의 결과물이다. 최초의 현대적 헌법인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무너뜨린 ‘수권법(授權法)의 망령’은 독재를 꿈꾸는 권력의 속성이다. 기껏 5년 단임제에서 뭘 하겠느냐는 반문은 우문이다. 입법권과 사법권까지 장악한다면 5년은 한 나라를 뒤바꾸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입법 쿠데타라며 절규하는 목소리에 눈과 귀만 막으면 된다.

권력자는 모든 국민을 봐야 함에도 그들의 눈에는 ‘내 국민’만 보일 뿐이다. 모든 것은 발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엔 상쟁, 현재는 폭주. 하지만 과연 우리의 미래에 상생(相生)은 가능할까. 그 전제는 거여 입법부의 탈(脫)대통령 시녀화이다. 언론중재법 문제도 상생의 정치로 풀어야만 한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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