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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상상의 주차장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서울은 자동차에 의해 살해된 도시이다.” 프랑스 사진작가 얀 베르트랑이 한 말이다. 지구 곳곳을 다니며 공중에서 자연과 도시 경관을 다루는 사진작가가 남긴 인상이니 허투루 넘기기 어렵다. 자동차 대수나 만성적인 교통 체증으로 말하자면 미국 도시들 특히 서부의 LA 같은 곳을 따라갈 수 없는데 서울의 인상을 자동차로 시작한 것은 의외다. 그 이유로 거리에서 자전거를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부연한 걸 보면 무분별하게 도시를 침범한 자동차를 지적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인도에 차를 세우는 것은 그의 말대로 도시를 살해하는 일이다. 건물-사람-자동차로 이어지는 도시적 배열을 무너뜨리고 사람과 자동차를 뒤섞는 일이니 살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인도는 시유지이고 거기에 주차하는 것은 불법이다. 도로 턱을 깎아 놓은 것은 장애인 휠체어를 위한 것이지 자동차를 인도에 올려놓으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인도에 주차선을 그어놓고 스토퍼까지 설치했지만 불법이다. ××건물 전용 주차장이라고 표시하고 심지어는 주차비를 받는 곳도 있지만 불법이다. 대지 경계선에 물려서 건물을 짓고 그 앞을 주차장으로 쓰는 것도 불법이다. 사유지라고 우기지만 인도를 주차 통로로 쓰기 때문이다. 법이 그렇다.

인도 주차장은 상상의 주차장이다. 집단적 경험을 통해 구성된 일종의 ‘상상의 공간’이다. 자기 건물 앞이니 차를 세워두겠다는 건물주나 차를 피해 걷는 보행인이나 이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행정기관 모두가 상상하고 용인하는 주차 공간이다. 없는 데도 있다고 믿는 상상의 주차장이다. 걷는 시민에게, 운전하는 사람에게 심지어는 건물주에게도 피해를 준다. 인도 주차가 불러오는 나비 효과는 심대하다.

첫째는 경관과 환경의 문제다. 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우거나 꽁초를 버리면 득달같이 나타나 단속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인도 위에 차와 사람이 섞여 있는 풍경은 야만적이다. 둘째는 걷는 시민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인도 위에서 만나는 자동차는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위협적이다. 주차를 위해 들고나는 차를 피해 걷는 사람이 차도로 내려서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인도에서도 편히 걸을 수 없다면 그건 도시가 아니다. 셋째로 자동차 중심 문화를 가속한다. 상상의 주차장을 믿고 나오는 차들로 교통 체증은 심해지고 인도에는 걷는 이가 뜸해진다. 그 결과는 지역 상권 쇠퇴로 이어진다. 애써 꾸민 쇼윈도가 자동차로 가려지고 걷는 사람이 없으니 상점이 잘 될 리가 없다. 걷기를 포기한 이들은 동네 상점 대신 대형마트로 향한다.

감염병 사태 이후 도시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도시에서는 사람의 관계가 밀접하니 감염병에 취약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원격근무나 자율주행 자동차 같은 새로운 기술이 도시의 몰락을 재촉할 거라고 한다. 하지만 반대도 많다. 도시는 경제적 기회뿐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세 흑사병이 있었고 20세기 초에는 스페인독감이 창궐했지만 도시는 살아남아 오히려 번창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다. 팬데믹 이후 대도시 인구는 약간 감소했으나 중소도시는 오히려 인구가 늘었다는 통계도 도시의 힘을 방증한다.

세계 대부분의 도시는 생존을 위해 기후변화에,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침체에 대비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를 필두로 여러 도시가 비슷한 개념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대책의 핵심은 TOD, 즉 대중교통 지향 개발이다. 보행과 자전거로 공동체 범위를 만들고 대중교통으로 연결하는 전략이다. 자족적 공동체를 만들고 불필요한 통근을 줄여 탄소 배출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세계적 대도시 협의체 ‘도시기후리더십그룹(C40)’은 동네 상권이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고 발표했을 정도다. 상상의 주차장은 기후변화 대응에도 동네 상권 회복에도 걸림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법이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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