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쥐려는 자들의… “권력 놓겠다”는 빈말

[커버스토리] 대선 단골 ‘대통령 분권 공약’ 이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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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일성으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강조했다. 권력기관을 정치와 분리해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총 9차례의 개헌이 이뤄졌고, 문민정부 이후 역대 대통령들도 제왕적 대통령제 혁파를 공약했지만 청와대에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다.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도 권력분산 공약 달성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주자들은 과거 대통령들처럼 4년 중임제 개헌 등의 권력 분산 공약을 내놓고 있다. 다만 성과를 거두려면 대통령 임기나 선출 방법뿐 아니라 인사권을 포함한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이 헌법에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재 8수석 체제인 청와대 조직을 일부 통합하는 한편 국무총리와 각 부처에 힘을 실어주는 제도적 방안 도입이 절실하다고 조언한다.

실패한 권력 개편…왜 해야 하나


문 대통령은 2018년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내놨지만 야당과의 합의에 실패해 처리가 무산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반부터 총리에 힘을 실어주는 ‘책임총리제’를 구상했지만 현 정부 총리들은 대통령에 가려 존재감이 미비했다는 평가가 크다. 청와대가 코로나19 사태와 부동산 문제 등 현안 대응을 주도하면서 실무 부처가 청와대의 지시만 바라보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 문제는 통일부가 아닌 청와대가 주도하는 형국이 됐다.

헌법에 명시된 3권분립의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우려가 많다. 지난해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내 ‘친문’ 논쟁이 보여주듯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이 여전하다. 대통령에게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헌법재판소장 인사권이 있기에 사법부 코드인사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정부 들어 국회가 청와대를 견제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인 인사청문회 제도도 유명무실해졌다”며 “청와대가 업무의 효율성 명목하에 권한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권력 집중은 각종 비리를 낳는다.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이나 사람이 지연이나 혈연 등을 이용해 대통령 혹은 대통령의 가족, 측근에 접근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금품 제공 같은 불법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정권과 가까웠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비리가 좋은 예다. 대통령 친인척 비위 감찰을 맡는 청와대 특별감찰관 자리는 인사난을 이유로 5년째 공석이다. 결국 전임 대통령들의 수난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헌, 인사권 분리가 중심돼야


권력구조 개편에 있어 개헌은 필수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7년 9차 개헌 이후 30년 넘게 개헌은 불발됐다. 장영수 교수는 “정권이 스스로에게 불리한 개헌을 하느니 아예 안 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며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개헌이 가능하다. 여야 합의가 절대적”이라고 설명했다. 개헌에 대한 집권 세력의 진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조정에 매몰돼 있는 개헌 논의를 탈피하고, 인사권 분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우리나라 대통령은 비공식적으로 당에 공천권을 행사하고 있다. 또 장관을 내각에 등용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며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해야 삼권 분립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감사원장, 각 군 참모총장과 국가정보원장, 경찰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주요 공직에 대한 인사권을 독점하고 있다. 공공기관 332곳 가운데 74곳의 기관장 임명권도 갖고 있다.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이 검증을 담당하고 문 대통령이 최종 후보자를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30명이 넘는 인사를 등용했고,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한 낙마자도 속출했다. 채 교수는 “국무조정실 등에 인사권 상당 부분을 넘겨야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임총리제 절실… 지방분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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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총리제 구현도 필요하다. 헌법상 총리는 내각 통할권을 갖지만, 장관을 임명하는 대통령에 가려 명목상의 권한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의 굳건한 신임 아래 사실상 내치를 담당한 노무현정부 이해찬 전 총리, 국민의정부 김종필 전 총리 등을 제외하면 대통령의 선의에 따라 총리의 실질적인 역할이 정해지고 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주요 공직 인사를 포함해 총리가 실무적인 정국 운영을 담당하고, 청와대는 장기적인 과제에 전담하도록 명문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업무가 겹치는 사회수석과 시민사회수석,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 등의 직급을 통합하고 현재 500여명인 청와대 직원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임 교수는 “청와대는 이미 거대한 하나의 내각이다. 사람이 많으니까 일이 겹치고, 자꾸 새로운 일까지 챙기다 보니 청와대의 힘이 세질 수밖에 없다”며 “청와대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에 힘을 실어주는 자치분권 정책도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 개편의 한 방안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수도 이전 논의를 제외하더라도 입법권을 국회와 지방의회가 균점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상원을 설치하는 식으로 국회와 청와대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 현 정부는 자치경찰제를 도입하고 지역별 일자리 모델을 만드는 등의 성과를 냈지만 권력 분산 단계까지 이르진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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