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이 세상에서 저 천국으로 구원 향한 순례를 떠나라

믿음의 천로역정 걸어간
영혼의 안내자 ‘존 버니언’

게티이미지뱅크

17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존 버니언(1628~1688·아래 사진)은 존 밀턴과 더불어 영국 청교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심령을 울리는 명설교자였다. 그가 베드퍼드 교회 목사로 있을 때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온 사람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그가 청중의 마음을 울리는 설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했다.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눌리기도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깊이 마시는 법도 배웠다. 가난한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이어받았지만 회심 후 사도 바울처럼 옥에 갇혀서도 말씀 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방종과 영적인 냉담함이 만연한 시대에 성령의 강력한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 그는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던 바로 그때를 자주 마음에 새기라고 간곡히 말한다. “제가 감히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을 처음으로 붙들어 주었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경험했던 양심의 두려운 가책과 죽음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로 간절히 구하며 흘렸던 눈물 또한 기억하십시오. 은혜가 필요한 모든 어려운 고비마다 여러분이 어떻게 탄식했는지도 여러분은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상황에서 나를 건져주실 주님을 기억하십시오.”(‘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중)

성령의 이야기꾼

그가 신앙을 갖게 된 것은 1647년 결혼한 직후였다. 그는 자서전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에서 접시나 숟가락 같은 가재도구도 없을 정도로 가난한 상태에서 아내를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건한 청교도 가정에서 성장한 아내는 결혼지참금 대신 아서 덴트의 ‘평범한 사람이 하늘에 이르는 좁은 길’과 루이스 베일리의 ‘경건 훈련’이란 두 권의 책을 버니언에게 선물했다. 그는 책을 읽고 신앙을 갖기로 했을 뿐 아니라 글을 통해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한 후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갔고 신앙이 깊어짐에 따라 영적인 고뇌도 깊어져 갈등에 빠지기도 했다. 성서의 본문들이 그의 아픈 곳을 찔러댔다.


“때로는 성경의 한 줄에서도 내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보기도 했지만 성경 전체가 막대기처럼 메마르게 다가오거나 내 마음이 성경에 무감각하고 바싹 말라서 성경을 두루 살펴도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한마디를 찾을 수 없는 때도 있었다.”(‘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중)

그는 영적인 침체기를 벗어나면서 점차 자신의 죄가 ‘죽어 마땅한 것’이 아닌 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는 말씀처럼 성경에는 두려움을 주는 본문뿐만 아니라 위로하는 것들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교인들을 심방하며 평신도 설교가로 재능을 드러냈다. 그의 자서전에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위해 쇠사슬에 묶인 채 그들에게 갔다”고 기록했을 만큼 헌신적인 사역을 펼쳤다.

당시의 정치적 배경은 청교도혁명의 와중이었다. 1660년 찰스 2세가 등극해 왕정이 복고돼 국교 신앙이 다시 강요됐다. 국교 외의 다른 종파의 설교는 하지 않는다고 선서하는 목사들에게만 설교할 자격을 주는 법령이 공포됐다. 많은 목사가 이 선서에 응했지만 버니언은 선서를 거부하고 청교도 종파의 설교를 계속하다 체포돼 12년 동안 옥중생활을 했다. 성경 한 권만 갖고 옥중에 갇힌 그는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1666)란 자서전을 집필했다. 옥중에선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나 바깥세상에 설교할 수 없자 글로 설교하기 위해 책을 썼다.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그 후 1672년 3월 찰스 2세가 비국교도들에 대한 관용선언을 공포함에 따라 버니언은 석방됐다. 당시 베드퍼드 교회는 그를 목사로 선출해 놓은 상태였다. 옥에서 풀려난 그는 청교도 교리의 설교를 하다 재차 투옥,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더 했다.

본향을 향한 순례자


그는 두 번째 석방 후 대표작 ‘천로역정’(1678)을 썼다. 원제는 ‘한 순례자의 현세로부터 내세로 가는 전진’이란 긴 제목이다. 1부는 크리스천이란 이름을 가진 순례자가 ‘멸망의 도시’를 떠나 험난한 길을 걸어 마침내 ‘하늘나라’에 이르는 과정, 2부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순례하는 이야기이다. 작품은 알레고리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미덕 죄 사랑 욕심 악마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의인화했다. 대부분 사건과 의미에 결부되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작품의 밑바닥엔 버니언의 자전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다. 버니언의 좌절은 소설 속 의심의 성에 사는 절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인 성주로 은유된다. 주인공 크리스천이 죽음을 상징하는 강을 헤엄쳐 건너다가 자신의 모든 죄에 대한 기억에 짓눌려 고생하는 장면은 구원의 확신을 얻기 전 버니언의 모습과 흡사하다. 순례자가 재판을 받는 장면은 자신의 체험을 회상한 것이다. 독자들은 순례자 크리스천을 따라 ‘낙심의 늪’에 빠지기도 하고 ‘좁은 문’을 통과하고 ‘허영의 시장’ 거리를 지나 ‘곤고산’을 넘어 마침내 ‘죽음의 어두운 강’을 건너는 동안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흐르는 서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성경 보급이 늘어난 시기였고, 평신도가 자국어 성경을 읽기 시작해 성경을 활용하는 법을 알고자 하던 시기였다. 그는 청중과 독자들이 성경 구절에 익숙하지만 수많은 해석 사이에서 판단을 내릴 때와 성경 구절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확신해 천로역정을 집필했다.


존 버니언은 1688년 설교를 위해 여러 지역을 방문하다 런던에서 열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60년의 생애에 12년간의 옥중생활을 했고 6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쇄된 ‘천로역정’을 비롯해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거룩한 전쟁’ ‘악인 씨의 삶과 죽음’ 등의 명저를 남겼다. 그의 작품 속엔 성경의 언어와 주제들이 살아 움직인다. 그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겪는 영적 씨름에 공감했고 성경의 영적 원칙을 삶과 연결했다. 사후 300년 넘도록 그의 작품이 세계 많은 사람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작가 자신의 끊임없는 영적 성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더 나은 본향, 하늘에 있는 나라를 사모합니다.”(히 11:15~16)라는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의 고백은 바로 존 버니언의 고백이었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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