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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대학의 경쟁 상대는 구글, 네이버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오늘날 같은 대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뒤에 대학은 유적지로 남을 것입니다.”

밀레니엄 시대의 도래 논의가 한창이었던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세계적인 미래 학자 피터 드러커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대학의 미래에 관한 파격적인 전망이다. 대학이 사라진다? 설마 대학이 사라지겠어? 사라진다면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건 밀레니엄의 이벤트에 올라탄 호사가들의 주장 아니겠어? 학계에서 나온 반응은 다양했다. 그만큼 대비가 없었고, 상상조차 하지 않 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대학은 수백년 존재해온 인류의 가장 튼실한 대표 제도이자 조직이 아니던가. 그런 대학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그렇게 되겠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참고로 이와 같은 우려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저출산, 인구 절벽, 학령인구 감소, 대학 정원 미달, 대학 소멸과 같은 인구학적 동향에 따른 대학의 존폐 논의가 아님을 밝혀둔다.

대학은 위기다. 위기의 핵심은 대학이 오랜 기간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와 권위가 빠르게 흔들리는 데 있다. 사실 대학은 지식의 생산, 지식의 확산, 지식의 소비에 있어 독점적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 어떤 세력도 그 어떤 기관도 이런 독점 권위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요즘 표현으로 지식 플랫폼을 대학이 장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독점이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대학이 차지하는 지식 생산의 비중은 점점 줄어든다. 강의실, 학생, 연구물 출간과 같은 대학 고유의 전통적인 지식 확산과 소비 양식은 소셜 미디어의 시대와 글로벌 시대에서 설 자리가 점점 협소해진다.

여기에 지식의 절반이 쓸모없는 것으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인 지식의 반감기는 짧아지고 있다. 오늘날 사회과학은 지식의 반감기가 대략 7년으로 통용된다. 증명에 의한 이론치에 가까운 법칙을 다루는 수학조차도 지식의 절반이 쓸모없는 데 걸리는 시간이 9년 정도다. 지식의 반감기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혁명의 시대에는 점점 짧아질 것임은 자명하다. 지식 생태가 완전히 바뀌고 더 급속히 변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제 대학의 경쟁 상대는 동종업계에 있는 다른 대학이 결코 아니다. 강건하게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는 곳이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다. 누가 이 시대의 지식 생태계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대학이 가장 버겁게 경쟁해야 할 상대는 구글, 네이버다.

어디 이것뿐인가. 시대가 요청하는 인재 양성의 새로운 방책을 기업이 내놓는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인문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캠퍼스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른바 ‘문송’(문과여서 죄송합니다)을 ‘문자’(문과여서 자랑스럽습니다)로 바꾸어 놓고 있다. 취업과 기업의 필요를 동시에 충족하는 선순환 모델로 평가하기에 손색이 없다.

대학의 고민이 점점 깊어진다. 세상의 급변으로 엎친 데 코로나19로 덮쳐 대학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와 코로나19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대학에는 절호의 기회다. 지속가능한 혁신의 허브 역할을 수행할 기회 말이다. 실제로 4차 산업혁명과 AI 혁명의 가능성을 한국 사회만큼 다양하게 실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회도 드물다.

우리 대학은 다양한 실험 여건을 등에 업고 혁신의 자원들을 종합하고 배열하고 재구성하는 중심 역할을 담아내야 한다. 내부로는 대학의 폐쇄적인 칸막이 문화와 관행을 과감히 떨쳐내는 것이 첫 과제다. 외부로는 창업가, 기업가, 투자가와 같은 일군의 경쟁 상대들을 협업의 연결 속으로 광범하게 끌어들여야 한다. 교육부도 머리를 맞대면 좋겠다. 단 교육부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와 관급공사 발주와 같은 지원의 틀을 버려야 한다.

가을 학기가 시작했지만 교정은 여전히 휑하다. 벌써 4학기째다. 코로나19를 핑계로 대학의 위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대학이 담당해야 할 책무를 소홀해서는 안 된다. 우리 대학에 주어진 예정 시간은 길어야 10년이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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