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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희망의 사람들] ‘바다의 민통선’ 넘나드는 사람들… 분단의 아픔 묻어나는 삶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 위판장 풍경. 어선이 당일 잡아온 문어는 수협에서 관광 홍보를 위해 즉석에서 삶은 뒤 진열해 판매한다.

바다에도 비무장지대(DMZ)가 있다. 바다의 민통선이라 할 수 있는 어로한계선을 넘나들며 고기잡이로 자식 키우고 은행 빚 갚으며 생계를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해안 최북단 대진항 주민들이다.

삼태기 모양의 대진항은 크진 않지만 항구가 품은 바닷속에 섬이 잠겨 있다고 할 정도로 바위가 많아 문어 숭어 광어 해삼 멍게 성게 등 바다 생물에는 천혜의 서식지다. 그래서 대진에는 ‘황금’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이곳 바다에 서식하는 ‘고성 문어’는 조선 시대 임금에게 진상하는 품목일 정도로 역사가 깊다. 지금도 간판 특산물이다.

지난달 말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 대진항을 다녀왔다. 오전 10시가 넘자 새벽에 출어했던 문어잡이 어선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항구가 아연 소란스러워졌다. 수협 위판장은 선 경매한 문어를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거나 관광객에게 팔려고 문어를 삶는 상인들로 활기가 넘쳤다. 김이 나는 큰 솥에 삶겨 분홍색으로 먹음직스럽게 색이 바뀐 문어는 미각까지 자극하며 항구의 정취를 돋웠다. 20∼30㎏를 훌쩍 넘는 문어는 어찌나 큰지 ‘대왕문어’라는 별명이 실감이 났다.

성진호 선주 정명수씨가 잡아온 문어를 꺼내고 있다. 강력한 빨판을 가진 대문어는 풀어 놓으면 바로 도망가기 때문에 망 속에 넣어 물속에 둔다.

새벽 3시 출항해 별을 친구 삼아 문어를 잡은 성진호 선장 정명수(61)씨는 “최근 열흘간 어획량이 좋았다. 오늘도 8마리나 잡았다”며 취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경남호 선장 김휘철(67)씨는 “오늘은 어째 5마리 정도 낚았다. 이 정도면 평균”이라고 했다.

문어는 낚시로 잡는다. 2∼3t 어선에 40정가량의 낚싯줄을 늘어놓으면 통상 4∼10마리가 낚인다. 문어는 호기심이 많고 식탐도 많다. 그래서 낚싯줄에 색색의 플라스틱이나 반짝이를 매달든지 은색 보온재를 붙이든지 해서 유혹하고 돼지비계도 꽂아 식탐을 자극한다. 김씨는 “식탐이 얼마나 많은지 문어가 입에 도루묵을 문 채 양다리에 한 마리씩 꿰차고 있는 걸 본 적도 있다”며 웃었다.

대진항은 1980년대까지 명태잡이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는 분단이 낳은 역설이다. 향토사학자인 청간정자료전시관 김광섭 관장은 “명태는 원래 함경북도 명천 길주 등에서 임금에게 진상하던 토산품일 정도로 그 지역에서 많이 나던 어종”이라며 “6·25전쟁이 끝난 후 북에서 어업 하다 내려온 사람들이 남한에서 명태를 주로 잡으면서 명태가 한때 고성을 대표하는 어종이 됐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문어에 명태잡이까지 가세하며 30~40년 전만 해도 대진항은 길이 비좁을 정도로 명태와 문어가 넘쳤다고 한다. 하지만 온난화로 수온이 올라가 한류 어종인 명태의 서식 환경이 나빠지고 중국 어선까지 출몰해 남획하면서 씨가 말랐다. 고성에서 명태잡이는 이제 옛말이 됐다.

경매하는 사람들로 분주한 위판장 모습.

지금도 고성을 대표하는 어종은 문어다. 대진어촌계 진맹규 계장은 “명태는 겨울철 서너 달 반짝하고 어망으로 잡기 때문에 온 가족이 매달려 일해야 했다. 문어는 1년 내내 잡을 수 있고, 혼자서 배를 타고 가도 돼 이점이 많은 어종”이라고 말했다. 진 계장은 “올해는 코로나로 관광객이 급감해 수요가 줄면서 문어 시세가 좋지 않았지만 곧 추석을 앞두고 있어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느 접경 지역이나 마찬가지지만 대진리 어부들로 분단 현실을 사는 불편함이 크다. 종일 총소리와 대포 소리를 들으며 살았고 사격장에서 날아온 포탄이 바다에 떨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예고도 없이 미사일이 날아온 적도 있다. 이런 애로를 보상하기 위해 정부는 어로한계선 이북의 저도 어장을 대진리와 초도리 주민에 한해 4월부터 12월까지 개방한다.

대진항 아이스크림 가게.

바다에서 조업할 때면 해경 선박이 함께한다. 조업 이탈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바다를 경비하기 위해서다. 정씨는 “오전 10시만 넘으면 철수하느라 마음이 바쁘다. 더 잡을 수 있는데도 못 잡고 올 때가 많다”라고 토로했다.

대진리 어부들은 월선에 대한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월선 딱지가 붙으면 자녀 취업까지 제약을 받는 시절도 있었다. 김씨는 “어로 한계선을 넘어가면 ‘월선’이라 해서 불이익을 받는다. 벌금을 내야 하고 면세유 등 각종 정부 보조 대상에서도 제외된다”면서 “월북 의사가 있어야 월선인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물이 북쪽으로 흐르며 떠내려간 어구를 건져 오려다 ‘아차’하는 순간에 선을 넘어간다. 조업구역을 잠시 벗어났을 뿐인데 월선이라는 딱지가 붙는 건 가혹하다”고 말했다.

문어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선.

동해 최북단 대진항 문어 잡이 어부들의 하소연에서 분단의 아픔이 물컹하게 잡히는 기분이 들었다.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고성=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사진 변순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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