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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서점에서 ‘찝쩍남’ 취급 받을 뻔한 사연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4주에 한 번 방송국에 간다.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올해로 9년째. ‘책하고 놀자’라는 프로그램에서 섭외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경험 삼아 시작한 건데 방송국 쪽에서 관두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껏 이어져 온 셈이다. 물론 나도 재미있어 그만두지 않았다. TV에 비하면 라디오는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부담스럽지 않다. 방송 시간도 20분가량으로 적당하다. 무엇보다 이런 ‘임무’가 있으면 평소에 부지런히 읽어둬야 하니까 직업상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하고 있다.

4주에 한 권을 소개하는 거지만 널널하진 않다. 칼럼도 써야 하고 강의도 해야 하고 가끔은 대담 진행을 맡기도 하고 본업인 편집 일도 수행하는 틈틈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다. 가장 큰 고충은 딱 이거다 할 만한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이 많거나 줄거리가 복잡하면 청취자들이 헷갈릴 수 있으니까 곤란하다. 유명 작가의 책은 굳이 내가 소개하지 않아도 잘 팔릴 게 뻔하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초반에는 흥미진진하다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바람에 애써 읽은 책을 집어 던진 적도 부지기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달에는 다섯 권이나 읽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큰일이네’ 하며 늘 방송 전날 쩔쩔매곤 한다. 그나마 사무실 근처에 서점이 있어 다행이다. 여차하면 식전 댓바람부터 달려가서 읽는다. 점심시간에 또 가서 선 채로 읽는다. 폐장 시간까지 최대한 들춰보다가 조금이라도 괜찮겠다 싶으면 몽땅 사 와서 밤새 읽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어떻게든 한 권은 건질 수 있다는 게 지난 9년 동안의 경험으로 얻은 깨달음이다. 출연료보다 책값이 더 많이 든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그러던 차에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방송을 앞두고 안절부절못하며 사무실 근처 교보문고에서 책을 잔뜩 구입한 날이었다. 고객번호를 입력하고 신용카드로 계산을 하려는데 카운터에 있던 담당자가 “출판사 분이세요?” 하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더니 “명함을 보여주시면 할인해 드려요”라는 거다. 이토록 바람직한 제도가 있다는 걸 그동안 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던가. 내 인간관계에 어지간히 문제가 많았던 모양이다. 담당자는 출판사 이름을 확인하고 할인된 금액으로 계산해 주었다.

이후로 친하게 지내는 출판사 편집자들과 점심을 먹다가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고 명함을 보여주면 할인해 주던데 알고 있었어?” 하고 물어보았다. “전혀 몰랐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경력으로 보나 인간관계로 보나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편집자들이 의아해하자 아무래도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확인차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한 권 고르고 계산할 때 명함을 얹어 내밀어 보았다. 담당자는 명함을 슬쩍 옆으로 치우더니 그대로 책만 들어 바코드를 찍고 정가로 계산했다. 역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한데 명함을 슬쩍 치울 때의 제스처에서 묘하게 예민한 기운이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내가 시커먼 속셈을 가지고, 말하자면 ‘작업’용으로 내밀었다고 여겼던 거다. 비슷한 일을 여러 번 겪어 명함을 보자마자 ‘뻔한 수작’으로 치부한 것이리라. 그래서 “저기, 그게 아니라, 출판사에서 근무하면 할인해 준다고, 이게 출판사 명함인데” 하고 장황한 설명을 허둥지둥 늘어놓았다. 그러자 상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출판사 분이세요?” 하고 묻더니 제꺼덕 할인해 주었다. 오해가 풀린 듯해 다행이지만 미안한 기분도 들었다. 충분한 이해를 갈구할수록 상대방에게 알려줘야 할 정보가 분명해야 하는 법인데. 한편으로 출판계 종사자들이 명함을 보여주고 할인을 받는 일이 드물다 보니 담당자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말인데 출판사 여러분,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입할 때는 이 제도를 활용해도 좋겠습니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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