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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우리가 몰랐던 장애인의 삶

맹경환 종교부장


버스에서 안내방송 소리가 아니라 눈으로 확인해야만 원하는 정류장에 정확히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청각장애인이다. 서울에 저상버스가 생기기 시작할 때 TV도 함께 버스에 설치됐다. 처음에는 TV 위치가 안내전광판을 가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몇 명이나 탈지 모르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분명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한 언론사가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한 끝에 지금은 TV가 운전석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다. ‘다음 정류장 ○○○’라는 문자 안내는 버스 어디에서나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됐다.

밀알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제7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 본선에 오른 19개 작품 중 하나에 소개된 내용이다. 최근 운 좋게도 본선 심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에 대한 ‘무지’를 깨우친 좋은 기회였다. 감사한 마음이다.

한 시각장애인의 새 아파트 적응기를 보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행동이 그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게 됐다. 시각장애인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큰 불편을 느낀다. 인도에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게 설치한 볼라드는 그들에게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시각장애인 새 입주민에게 혹시 장애가 될까 봐 볼라드를 치워버리는 아파트 관리실의 ‘과잉 친절’은 이정표를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중증 발달장애 딸을 키우는 엄마에게 가해진 세상의 비정함은 분노를 자아낸다. 딸이 돈을 내지 않고 서점에서 책을 가져갔다가 절도 혐의로 신고됐다는 전화를 받은 엄마는 한걸음에 파출소로 달려갔다. 서점은 합의금을 요구했다. 그런데 액수가 터무니없다. 1년 치 분실된 책값을 모두 요구한 것이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장애등급을 받기까지 6개월간의 힘겨움을 전한 딸의 사연도 있었다. 택시는 승차 거부하기 일쑤였고 불친절한 사설응급차에는 예상치 못한 비용을 지급해야 했다. 장애등급을 받은 뒤에도 장애인택시를 타기 위해 1~2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힘든 세상 속에서도 ‘의인’은 있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한쪽 눈의 시력이 없고 크기도 달라 어려서부터 ‘왕눈’ ‘짝눈’이라는 놀림을 받았던 주인공 이야기에 등장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은 특별한 체육시간을 만들었다. 2인 1조로 짝을 이뤄 한 명은 눈을 가리고 다른 한 명은 눈 가린 친구가 다치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 놀이였다. 그리고 ‘짝눈’이를 불러내 친구들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세상을 반밖에 볼 수 없지만 그만큼 두 배 더 깊게 볼 수 있는 눈”이라고. 그 후 친구들은 별명이 아닌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 그는 이후 ‘장애’를 개의치 않고 살았다고 한다.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동생과 함께 성장하는 언니의 이야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언니는 동생을 위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습관이 생겼고 덕분에 차분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다고 한다.

장애인이나 그 가족은 세상에 큰 것을 원하지 않는다. 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라며 자폐성 장애아들에게 접근하는 한 중년 여인이 엄마는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단다. 아들을 장애인이 아닌 그냥 청년으로 봐줬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리를 장애인 가족이라고 동정의 시선이나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대신 희로애락이 있는 ‘그냥 가족’으로 봐주는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썼다.

심사를 마치며 발달장애 손자와 편견 없이 교감했던 할아버지를 본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고,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은 채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던 우리 아들을 아버지는 보듬어주시고, 인정해주시고 함께 마음의 진정한 대화를 나누셨다. 그 진정한 무언의 대화가 우리 아들을 변화의 시작으로 이끌어준 것 같다.”(‘효도과목 전교 1등 손자’ 중에서)

맹경환 종교부장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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