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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애인, 별장, 그리고 배

박두호 (전 언론인)


하도리 별방진 앞 서문동포구에서 우리 동네 정씨(66)가 그의 배 엔진실에 들어가 뭔가 고치고 있다. 2.89t 배니까 길이 7m, 폭 3m 정도 되는 크기로 엔진실이라야 몸 하나 겨우 들어가 허리도 펴지 못하는 폐쇄된 작은 공간이다. 엊그제 한치 낚시 나갔다 고장 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날 고치는 모양이다.

그들은 평소 트랙터, 경운기 등 농기계를 다뤄 배의 엔진도 어렵지 않게 만진다. 그 배의 지분을 갖고 있는 김씨(59)에게 기술자를 부르지 왜 저 고생이냐고 물었더니 “그러니까 100억대(재산)를 유지하지”라고 답했다.

그 배는 원래 어선으로 3년 전 600만원에 샀다. 어선 면허를 300만원에 팔고 동력수상레저기구로 용도를 바꿨다. 배는 300만원에 산 셈이다. 정씨와 김씨는 레저용으로 등록하고 어군탐지기 등 장비를 바꾸고 수리하는 데 1200만원 정도를 더 썼다. 1년 365일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빼고 그 배는 늘 바다에 나간다. 낚시의 즐거움 뒤에 지속적인 비용 지출과 수고가 따른다.

현씨(63)는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작은 배 한 척을 샀다. 엔진의 방향을 핸들로 조절할 수 있도록 조타석을 만들었다. 닻을 동력으로 들어 올리는 윈치를 소형으로 달았다 다시 큰 것으로 교체했다. 후미에서 물이 스며들어 세 차례 선착장에 올려 수리했다. 350만원에 사서 1100만원을 더 들였다. 지난겨울 참돔을 많이 잡았다. 최고의 한 해였다. 2월에 대형 삼치, 방어 등 대물을 몇 차례 터뜨렸다. 그걸 잡는다고 낚시 장비만 줄잡아 250만원어치 더 샀다. 지금도 물이 스며들어 주기적으로 퍼주고 있다.

태풍이 지나가면 동네 사람들은 포구로 모인다. 집이야 오래 살아왔으니 탈 날 일이 없고 그보다 포구의 배들이 태풍을 어찌 견뎠는지가 궁금하다. 포구에는 벌써 크레인이 배 한 척을 선착장으로 올리고 있다. 다른 배 한 척은 물이 가득 찼고 한 선주는 물이 반쯤 찬 배에 올라 물을 푼다. 배 어느 쪽 모서리가 깨진 거다. 다음 태풍에 누구 배가 물에 잠길지 모른다.

애인과 별장은 갖는 순간부터 후회한다고 한다. 배도 그렇다. 출항하려면 배 앞뒤에서 고정한 줄을 풀고 정박한 배 사이로 조심스레 포구를 벗어나야 한다. 애인을 만나려면 시간을 쪼개고 스케줄 짜는데 순열, 조합의 복잡한 연산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바다에 나가면 낚시는 즐겁지만 너울이 있어 배가 흔들리고 멀미를 한다. 애인도 때론 까탈스럽다. 입항해서는 바닥에 흘린 크릴, 밑밥 가루를 물로 씻어낸다. 애인을 만난 뒤에는주위 사람에게 친구 아버님 장례식 같은 뻔한 거 말고 좀 더 치밀한 알리바이를 대느라 고심해야 한다.

배를 갖게 된 낚시꾼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다른 배에 한눈을 판다. 소형차를 아무리 튜닝해도 소형차다. 그도 중형차, 대형차를 몰고 싶다. 엔진 출력이 낮은 낡은 배를 매일 대면서 옆의 잘 빠진 배를 자꾸 쳐다본다. 장담하는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를 갈아탄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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