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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언론이 사는 길

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집권여당의 자충수다. 외신이 분석하듯,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권에 비판적인 주요 언론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면 그 셈법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언론중재법안을 비판하는 수많은 글 중에서 국민일보 권기석 기자의 ‘허위보도라는 덫’이라는 칼럼이 눈에 들어온다.

권 기자는 사실(fact)과 진실(truth)을 구분한다. 언론은 사실 보도가 생명이다. 수사기관의 발표 등 ‘공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애쓴다. 그런 노력에도 사실이 진실과 다를 수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사기관이 틀린 사실을 발표했다면 그것을 보도한 언론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의 법안은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진실을 보도하지 않은 언론에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 권 기자 말대로, 정권이 설정한 진실을 따르지 않는 언론을 겁주려는 계책이다.

다른 시각도 있다. 각종 언론단체가 비판적 주장을 쏟아내지만 여론은 대체로 시큰둥하다. 한국 언론이 그동안 얼마나 사실 보도에 충실했는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정파적 보도로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실을 보도한다고 하면서 다른 쪽 사실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외면한다면 그것은 사실을 왜곡, 조작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진실과는 당연히 거리가 멀다. 편론(偏論)은 언론이 아니다.

물론 완벽하게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플라톤은 일찍이 인간을 ‘동굴 속의 죄수’로 비유했다. 벽에 비친 허상을 진실로 착각하며 평생을 산다는 것이다. 현대 철학자 존 롤스는 ‘판단의 한계’를 인간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사람도 진실을 판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실체적 진실이다. 오죽하면 편견을 없애려는 시도 자체가 편견의 산물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사물을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데도 ‘사실의 착각’을 범한다면 심하게 탓하기 어렵다.

문제는 언론이 자사(自社) 이기주의에 빠져 의도적으로 사실 보도를 소홀히 한다는 점이다. 극단적 진영논리에 빠져 정치경제적 이득을 도모하는 언론도 있다. 유튜브 등 일부 뉴미디어가 ‘대안 사실’ 등 말장난을 하며 진실을 욕보인다. 클릭 수 등 상업주의가 이런 세태를 부추기고 있다. 전통 언론마저 ‘미디어 포퓰리즘’을 흉내 낸다면 언론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권과의 거리두기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히 진보와 보수 사이 진영 교체가 일어날 때마다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는 언론이 늘고 있다. 그 곡학아세가 위험수위를 넘는다. 진영을 불문하고 권력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는 언론의 필수 덕목이다. 우리 편이라고 무턱대고 감싸고, 저쪽 편이라고 무차별 비판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정론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언론의 당파성이 더 짙어졌다. 기사 제목만 봐도 어느 편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언론이 진영논리의 전파자가 돼 버린 것일까. 짠맛을 잃은 소금은 존재 이유가 없다. 치우침이 없는 뉴스에 얼마나 충실한지 한국 언론은 자성해야 한다.

더 큰 산이 남아 있다. 언론은 독자를 소중히 받들어야 한다. 독자는 언론의 생명줄이다. 그러나 독자를 잘 모시는 것과 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뉴스를 제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언론은 권력뿐만 아니라 때로 독자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 독자의 취향이나 눈높이에 부응하느라 편향성을 띠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느 유명 방송 PD는 “시청자는 다 옳다. 그들이 진리다”라고 공언한다. 시청률이 곧 방송의 질을 반영한다는 믿음이다. 부분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 언론은 독자의 정치 노선, 지역, 세대라는 함수에 깊이 포박돼 있다.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그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 사실 보도를 위해서라면 언론은 독자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공기(公器)의 자세이다. 말만큼 쉽지는 않다.

어느 언론인이 자조했듯이, 불편부당에 중도를 표방하는 글은 대체로 심심하다. 조미료 팍팍 친 음식에 손이 자주 가듯이, 편향성을 띤 언론에 열렬 지지자들이 몰려든다. 평양냉면의 진가는 그 슴슴한 맛에 있다. 한국 언론이 정론을 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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