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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노동의 신성함을 갈라치기 말라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유럽의 경제사에서는 16세기를 산업혁명으로 가는 근대가 시작된 분수령으로 본다. 서양의 역사에서 매우 큰 변화들이 그 세기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오랫동안 지속된 봉건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상인 세력과 연대한 절대왕정이 등장했다. 조선과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지리상의 발견이 이뤄졌다. 신대륙이 개척됐으며 원거리 무역과 상업이 융성하면서 자본이 축적되고 자본가가 등장했다. 도시화도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노동자 계급도 이즈음부터 대규모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14세기 중반 페스트 대유행 이후 정체됐던 인구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게 16세기다. 영국에서는 이미 13세기부터 진행되던 인클로저 운동이 강화되면서 많은 농노들이 전통적 생활 터전인 영지에서 쫓겨났다. 토지를 빌려 생업을 유지하던 자유농민들은 높은 소작료 때문에 역시 도시로 밀려났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작은 수공업이라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도시에서는 길드에 가입하지 않고는 어떤 생산도 어려웠다. 그러나 도시의 길드는 점점 더 배타적으로 돼가고 있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노동을 파는 것 이외에 생존의 수단이 없게 된 것이다. 전형적인 노동계급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상이 오늘날의 그것과 유사하리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임금은 겨우 생존 수준이었고 오염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 환경은 극도로 열악했다. 주거 환경과 위생 또한 최악이었다. 상수도가 있을 리 없었고 인간의 배설물을 지하에 쌓아두거나 창을 통해 길거리에 투기하는 것이 허다했다.

카리브해 마르티니크섬 출신인 나폴레옹의 여인 조세핀이 첫 결혼을 위해 1779년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도 길거리가 더럽다는 것이었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오폐수가 흐르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노동의 권익을 위한 투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노동의 신성함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운동은 당연한 것이고 자본의 부당한 대우에는 당연히 저항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사회적 문제는 자본보다는 오히려 노동운동에 있는 것 같다. 자본의 부당함은 쉽게 드러나고 수정되는 편이다. 제도적으로도 크게 개선됐고 그런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 문제는 조직화된 노동 곧 노동조합이다. 그들의 부당함에는 법과 공권력도 통하지 않는다. 문재인정부는 아예 방치하고 이제는 그들의 비행을 비호하는 수준이다.

지금 이 나라의 조직화된 노동운동은 그 의미를 상실한 지가 꽤 됐다. 이익집단이 된 노동조합은 자기들만을 위한 부당한 요구와 정치 투쟁을 일삼는다. 오죽하면 귀족노조라고 하겠는가. 기업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대다수 비조합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알게 모르게 희생시키고 있다. 이제는 심지어 조합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노동자를 핍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얼마나 괴롭히면 자살까지 하나. 노동의 신성함을 왜 갈라치기 하나.

경제활동인구의 10%에도 못 미치는 노동조합이 90% 이상의 노동자를 볼모로 삼아 스스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지금 이 나라의 노동조합은 폐기돼야 마땅하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전체 동료 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으로 재탄생해야만 한다. 그도 저도 어렵다면 광야에 선 90% 이상의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노동운동이 떨쳐 일어나야만 한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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