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성숙기 접어든 뇌과학, AI·마케팅·자율주행과 융합하다


급변하는 현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 그리고 기술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과학은 지식의 근간이며, 기술은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매월 한 차례씩 가장 주목해야 할 과학과 기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매회 주제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기술예측센터 자문을 통해 선정하고 있습니다.<편집자주>

난치병 치료제 등 응용사례 다수

사진=unsplash

파킨슨병. 뇌의 특정 부위에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줄어들며 손이나 발이 떨리고 굳어지는 병이다. 난치성 질환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희망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방식의 ‘뇌심부자극술(DBS)’이 개발·발표됐기 때문이다. DBS는 뇌에 직접 전극을 넣고 약한 전류를 흘려 넣는 치료법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쓰였지만 약물치료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 2월 독일 및 캐나다 영국 한국 등의 국제 공동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스 뉴롤로지(nature reviews neurology)에 새로운 논문을 제시하며 치료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높아지게 됐다. 최근 연구에 따라 뇌 신호를 직접 모니터링하고, 뇌에 삽입하는 전극의 형태 및 전압, 전기주파수까지 조절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꾸준한 뇌과학 연구가 의학 발전에 기여한 사례다.

미래를 이야기할 때 뇌과학은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다. 뇌의 비밀만 풀린다면 난치성 신경질환이나 정신질환도 정복할 수 있고, 생각만으로 로봇도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식상한 이야깃거리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신경질환 환자와 가족들은 여전히 치료법을 찾기 어렵고, 뇌 기술을 이용한 첨단장비도 실용화된 것은 거의 없다.

최근 수년 사이 이런 흐름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수십년간의 연구 성과가 쌓이며 이제는 ‘뭔가 좀 쓸 만한’ 연구 성과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치매 치료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경우 완치가 어렵다.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물질이 뇌에 쌓이면서 생기는데, 이를 제거할 약물을 찾기 어려웠다. 이는 다년간의 뇌연구로 활로가 뚫렸다. 새롭게 등장한 약의 이름은 ‘아두카누맙’.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이 개발한 약으로 지난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얻었다. 물론 아직 완전하진 않다. 베타아밀로이드가 제거되더라도 손상된 뇌세포를 되돌리기는 어려워 중증질환에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인류 최초로 알츠하이머 원인물질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라 향후 다양한 치료 방법 개발에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비슷한 사례는 다수 찾을 수 있다. 지난 5월 프랑스에선 해조류에서 뽑아낸 유전자를 망막세포변성증을 앓고 있는 시각장애인의 눈에 이식했는데, 눈에서 받아들인 빛을 시각중추를 통해 뇌로 보내는 데 성공해 환자는 어느 정도 시력을 회복했다. 시신경과 뇌신경의 연결을 뇌과학 수준에서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성과다. 이 밖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의 원인 부위를 뇌에서 발견해 치료법을 찾아낸 경우, 뇌 신호를 해석하지 못해 발생하는 척수성 근육위축증 치료제 개발 등의 실용화 사례가 최근 수년 사이에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뇌 분야에서 이런 성과가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는 까닭을 오랜 연구의 축적에서 찾는다. 서판길 한국뇌연구원 원장은 “뇌연구는 기초연구 성격이 강했지만 오랜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실용적인 성과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마케팅도 뇌과학 시대 ”

전문가들은 뇌과학의 실용화가 단순히 의료서비스를 넘어 혁신의 근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뇌과학의 발전이 의료서비스를 넘어 정보통신기술(ICT), 환경,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며 혁신의 근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 분야다. 딥러닝이라고 부르는 인공지능 기술은 신경세포의 형상에 따라 인공지능 회로를 구성하는 기술이다. 세계적 컴퓨터 프로세서 개발업체 인텔도 프로세서 설계 과정에서 인간의 뇌신경을 흉내 낸 ‘뉴로모픽 칩’을 2017년 발표한 바 있다. 알파고 등으로 알려진 기존 인공지능 기술은 가상으로 뇌신경회로를 구성해야 하므로 고가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한데, 뉴로모픽 기술을 이용하면 작은 칩 하나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고성능 인공지능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릴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최근 마케팅 분야에서도 뇌과학 도입이 거세다. 인간 심리를 바탕으로 마케팅을 펼치는 뉴로 마케팅의 등장 덕분이다. 이는 뉴런(Neuron)과 마케팅(Marketing)을 합친 용어로, 소비자의 두뇌 자극 활동을 분석해 마케팅에 접목한다. 이는 이미 실용화된 기술로, 국내에선 기아자동차가 승용차 K7의 이름을 결정할 때 이 기술을 사용한 바 있다. 국내외 200여명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추가로 시선 추적 및 두뇌 fMRI(기능성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통해 소비자 선호를 분석했다.

문지영 한국뇌연구원 뇌연구정책센터장은 “첨단 영상장비가 발전하고 인공지능 기술이 뇌연구에 적극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의학뿐 아니라 수면조절, 자율주행 등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국내에 뇌 산업 기업은 이미 180개에 달하며 그 파급 효과가 다양한 연관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 시책도 ‘실용성’에 방점

이런 흐름에 따라 국내 과학계에서도 뇌과학 분야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실용성 있는 연구 비중을 늘려가겠다는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실용화 위주의 뇌연구 프로젝트인 ‘뇌과학 선도융합기술개발사업(K-Brain Project)’을 진행키로 하고 지난달 25일 대구 한국뇌연구원에서 연구 방향 결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김철훈 연세대 의대 교수는 “뇌연구도 도약에 나설 때가 됐다”며 “사업단에선 30건 이상의 연구 주제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측은 “전문가 공청회 및 간담회를 연이어 진행하며 정책을 가다듬고 있다”며 “학자들만의 과학이 아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뇌연구가 될 수 있도록 정책과 지원 사업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전승민 과학저술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