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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 ‘청부 고발’, 공수처로선 반전의 기회다


첫 단추 잘못 꿴 1호사건 수사 마무리도
공소심의위에 결정 떠넘겨 책임 회피 비판 받아
국민적 여망 부응하려면 정국 뒤흔든 ‘고발 사주’ 의혹 수사 착수해야…
전격적 압수수색 통해 진상 철저히 파헤치길
공수처 의지, 수사 역량, 정치 중립성 당당히 증명해보여야
이게 존재 회의론 불식하는 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1호 수사는 박한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사건 선택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권력형 부패나 검사 비리가 아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혜채용 의혹 사건을 생뚱맞게 첫 수사 대상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사건은 공수처가 수사만 할 수 있을 뿐 기소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감사원이 경찰에 고발한 사안을 굳이 공수처로 이첩토록 해서 ‘쉬운 수사’에 나섰다. 자기편을 타깃으로 삼은 데 대한 여권의 반발은 그렇다 치고 국민 눈높이에도 맞지 않았다.

4개월간의 수사 마무리도 개운치 않다. 공수처 스스로의 판단으로 공소 제기 여부를 결정하면 될 일을 그간의 비판을 의식해 자문기구인 공소심의위원회까지 열면서 수사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 뻔한 결론이 났고, 수순에 따라 공수처는 지난 3일 조 교육감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해달라고 검찰에 요구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자문기구에 사실상 결정을 떠넘긴 건 책임 회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공소심의위 의견이 구속력은 없다 해도 별반 차이가 없다. 더욱이 공수처는 검찰과 달리 조직을 상호 견제 차원에서 수사부와 공소부로 분리 편제해 놓았다. 공소부는 수사 결과를 분석·검증하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곳이다. 공소부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도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데 옥상옥 심의를 한 격이 됐다.

공수처는 이런 비판을 쓰디쓴 보약으로 삼아야 한다. 차후의 수사부터라도 권력형 범죄를 단죄하는 공수처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이 여럿 있다. 윤중천 면담보고서 왜곡·유출,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외압, 옵티머스 사기 부실수사,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수사방해 의혹 등 주로 전현직 검사 관련 사안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검찰에서 한 번 걸러졌거나 진영 싸움에 의해 불거져 나온 손때 묻은 사건이다. 그만큼 신선도가 떨어진다. 이런 재료로는 국민의 입맛을 돋우는 요리를 할 수 없다. 공수처가 국민적 여망에 부합하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데 때마침 정국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윤석열 검찰총장 재임 때인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제1야당에 범여권 정치인 등에 대한 고발을 청부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윤 총장의 ‘눈과 귀’ 역할을 했던 손준성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였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범여권 인사 등 11명에 대한 고발장과 실명 판결문을 전달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지난주 인터넷 매체의 보도로 촉발돼 여야의 정쟁으로 비화되면서 대선판의 뇌관이 됐다.

보도 내용이 구체성을 띠고 있는 점, 실명이 적힌 판결문은 당사자와 판검사만 접근할 수 있다는 점, 손 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김 의원이 “기억에 없다”며 모호한 태도를 보인 점 등은 짙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메가톤급 의혹이 사실이라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 위반 차원을 넘어 검찰 권력 사유화를 보여주는 헌법농단 사건이다. 신속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이 시급하다. 대검 감찰부가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강제수사로 전환하지 않고선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 지휘탑인 감찰부장이 대표적 친정부 인사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공정성 논란이 벌어지고, 반대 진영은 납득하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중립지대의 공수처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수처가 맡아야 할 전형적인 권력형 범죄 유형이기도 하다. 한 시민단체가 어제 공수처에 고발장을 제출한 만큼 즉각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파장이 큰 사안이므로 시간을 지체해서도 안 된다. 좌고우면하면 자칫 실기할 수 있다. 대검을 비롯해 관련자 사무실, 휴대전화, 통신기록 등에 대한 전광석화 같은 압수수색을 벌여 증거부터 확보하라. 그게 수사의 기본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공수처로선 이번 사건을 통해 수사 의지와 역량, 정치적 중립성을 당당하게 증명해 보일 책무가 있다. 출범 8개월도 되지 않아 내공이 어느 정도 쌓였는지는 모르지만 조직의 명운을 건다는 각오로 정치적 고려 없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다른 사건들은 일단 보류하고 수사력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검찰의 정치공작인지, 여권의 공작정치인지, 그 미스터리를 명명백백하게 풀어야 한다. 그게 바로 공수처 존재 의미에 대한 회의론을 불식시키는 길이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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