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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지난 한 주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네 명의 남녀 고등학생이 길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담배를 사 오라고 시키고, 거절하자 반말로 조롱하고 꽃으로 때리고 모욕했다. 다른 학생들은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으며 비웃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고 한다.

자기들이 추진하는 법안 통과가 무산되자 한 초선의원은 70대 국회의장 이름을 존칭 없이 부르며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라고 야유하고 욕으로 해석될 말을 페이스북에 썼다. 욕이 아니라 다른 뜻이라고 해명했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본래 높임말인 ‘씨’를 이름 뒤에 붙이는 것을 가지고도 시비를 벌이는 세상이라 더 민망하게 생각되는 뉴스였다.

101세 철학자에게 100세 장수를 무슨 자랑으로 아느냐며 오래 사는 게 위험하다는 글을 쓴 사람도 있었다. 그는 인간의 적정 수명이 로마 시대는 70대 중반이었고 요즘은 80세 정도라며 그 이상 사는 건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는 글도 썼다. 적정 수명에 대한 언급이 일반적 의견일 때는 이론일 수 있지만 특정인을 겨냥한 발언일 때는 저주가 될 수 있다. 그 글은 노철학자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지만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자살을 조장하는 것으로도 읽혀 걱정스러웠다.

코엔 형제는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만들었다. 2008년의 일이다. 아버지를 이어 평생 마을의 치안을 지켜온 명망 있는, 그러나 이제 나이 들어 늙은 보안관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현실에 좌절하고 쓸쓸히 은퇴한다. 이 노련한 보안관을 물러나게 한 것은 그가 활동하는 동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악당의 출현으로 표현된다. 그의 경험과 이성은 낯선 현실과 무자비하고 잔혹한 악당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나이가 들면 신체적 지적 능력이 약해지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나 노인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 우리가 확인하기로는, 그의 나이가 아니라 세상의 무자비함과 잔혹함이다. 노인이 되는 순간 그들은 그들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노인은 다만 나이가 들었을 뿐인데 이방인이 된다. 빠르게 변하는, 예전 같지 않은 세상이 그들을 이방인으로 만든다.

그렇다고 낯선 세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노인이라는 이유로 존경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누구도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노인이라는 이유로 조롱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래 살았다는 건 영광이라고 할 수 없지만 치욕도 아니다. 생의 길이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일 수 없다. 사람은 자기가 한 일로 비판받거나 인정받을 뿐, 그의 나이로 비판받거나 인정받아선 안 된다. 그것은 여성이나 남성, 출신 배경, 어떤 취향이나 이념을 가진 것이 혐오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방인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관용과 환대의 대상이다. 다르기 때문에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것이다.

노인만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없어야 한다. 그 나라는 노인 외의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노인’ 대신 여성이나 지식인, 어린이, 특정 이념이나 종교를 가진 사람을 넣어도 마찬가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있어야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노인 외의 모든 사람, 젊은이와 어린이를 위한 나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나 이념이나 계층만을 위한 나라를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없다. 특정 종교나 이념이나 계층을 배제하는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식을 무시하고 특정인을 향해 혐오의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나라가 특정 종교나 이념이나 계층만을 위한 나라여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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