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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조악한 출판유통 통합전산망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중형서점의 모범을 보이던 불광문고가 지난 5일 25년의 역사를 접고 문을 닫았다. 수많은 중소형 서점도 폐업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6월에는 1988년 설립돼 교보문고, 영풍문고와 함께 국내 3대 대형서점이었던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해 온 서울문고가 극심한 경영 악화 끝에 부도를 냈다. 다른 대형서점들도 매출이 줄어 경영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2020년 6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국내 2위 도서 도매업체인 인터파크송인서적에 파산 선고를 내렸다. 다른 도매상들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 출판유통은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다. 출판사들은 책을 배본할 서점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직원과 신간 종수를 줄이며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 초판 발행부수는 대체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00년대 초반에 명성을 날리던 출판사 중에서도 1인 출판으로 겨우 버티는 곳이 적지 않다. 출판사에서 밀려 나온 편집자들이 1인 출판사를 차리는 바람에 출판사 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2∼3년 경력의 편집자들이 콘텐츠업체 에디터로 자리를 옮겨가는 바람에 출판계는 때아닌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팬데믹 상황이 시작된 초창기만 해도 원격 노동이 가능하고 택배 발송이 가능한 출판은 타 업종에 비해 상황이 양호했다. 집에 ‘갇힌’ 어린이들을 매료시키는 흡인력이 강한 소설을 펴낸 일부 출판사는 특수마저 누렸다. 그러나 유통시스템의 심각한 붕괴는 출판 종사자들에게 엄청난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그리고 출판단체들은 이에 대한 대책을 전혀 세우지 않고 있다.

유일한 것이 문체부와 출판진흥원이 약 6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만들고 있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통전망)이다. ‘투명하고 고도화된 정보시스템을 통해 선진화된 출판유통문화를 정착’시킨다며 2019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통전망은 지난 1일 임시 개통을 했다. 오는 29일 정식 개통 예정인 통전망을 살펴본 출판인들은 시스템의 조악함에 크게 놀라고 있다. 이 정도 프로그램이라면 수억원으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극단적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통전망에 있는 판매관리나 메타데이터관리는 규모가 있는 출판사들이 이미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국의 서점을 연결하지 못한 판매 통계는 신뢰할 수가 없다. 점차 서점의 연결을 늘려간다고 하지만 그럴 개연성이 적어 보인다. 민간에서 해야 할 일을 국가기관이 무리하게 주도하는 것을 반대해 온 출판사들은 통전망을 처음부터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한 출판단체 소속 출판인들이 협력해 아이디어를 냈다는데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개탄스럽다. 그 단체가 분석해 회원사에 보낸 자료만 봐도 통전망이 얼마나 부실한 시스템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문체부나 진흥원은 통전망이 출판사업에 전혀 무용지물인 ‘깡통’에 불과하다는 극단적 비판을 새겨들어야만 한다. 비판하는 이들도 통전망과 같은 시스템의 당위를 모르지 않는다. 세계 출판계가 전자책과 저작권 수입으로 이익을 늘려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독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은 시급하다.

통전망은 작가(저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시스템 구축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전문적 평가를 거쳐야 하겠지만 통전망을 차라리 폐기하는 게 옳을 것 같다. 깡통에 물(예산)을 준다고 해서 생명을 얻어 숨을 쉴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녹만 슬 것이다. 출판계는 이제 수수방관에서 벗어나 혼연일체로 미래지향적 시스템을 준비해야만 한다. 출판계만 협력하면 적은 예산으로도 확실한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 서둘러야 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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