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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줄 수 있는 뇌물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명절을 앞두고 편의점에서 선물세트가 팔리던 풍경은 흘러간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세상이다. ‘이 정도면 되나?’ ‘섭섭하진 않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고, ‘받아도 될까?’ ‘다른 뜻은 없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장사하는 처지에서야 아쉬움 가득한 변화지만 대체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그저 쿨하게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러다 보니 마음은 편해도, 또 아쉬운 상황이 생길 때가 있다. 한 번은 우리 편의점 인테리어 공사를 다시 하게 돼 본사 담당자에게 화장품 세트를 선물했다. 수리하는 기간 열심히 뛰어다녀 고마운 마음도 있고, 푸석한 얼굴이 애처로워 내 딴엔 마음을 담아 준비한 선물인데, 계산대 옆에 쇼핑백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쪽지가 붙었다. “경영주님, 회사 규정상 받을 수 없습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차, 그분의 입장은 헤아리지 못했구나. 그 마음이 미안하고 다시 고마워, 나중에 아이스크림 하나로 대신했다. “메로나는 규정에 없겠죠?” 하면서. 화장품 세트는 내 피부에 촉촉이 기여하는 중이다.

편의점 가맹점마다 영업 실태를 확인하는 본사 담당자가 있다. “밥 한번 먹읍시다” 하면서도 좀체 지키지 못한다. 그도 바쁘고, 나도 바쁘고. 담당자는 그동안 여러 명 바뀌었는데, 매번 공약(空約)에 그쳤다. 그러다 오래 정든 담당자가 작별 인사차 편의점을 찾았기에 기어이 근처 식당에 끌고 갔다. “규정상 식사 대접도 안 됩니다”라고 하기에 “그럼 자네가 사!” 하면서 데려갔다. 식사 도중 잠깐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내가 계산했더니 나중에 얼굴이 사색이 되더라. “괜찮아, 가맹점주가 본사 직원에게 산 게 아니라 오빠가 동생에게 샀다고 생각해.” 하긴 그날 우리는 편의점 이야기는 일체 않고 여행, 음악, 연애, 결혼, 육아 이야기만 실컷 나눴다. ‘동생’은 그 뒤로 종종 안부를 전한다.

때론 규정이 너무 야박하지 않나, 불만도 있다. 식사 정도는 괜찮을 텐데. 그렇다고 호텔 뷔페식을 대접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순댓국 한 그릇인데 말이다. 물론 그 정도는 괜찮다는 유권해석(?)이 있지만 오해받을까 두려워 식사 자체를 꺼리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나도 ‘밥 대신 말’로 하려는 경향이 늘었다. 휴대폰 메신저에 ‘고맙습니다’라는 이모티콘이 스무 개쯤 늘었다. 엎드려 절하면서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는 토끼, 데굴데굴 구르며 ‘압도적 감사’라고 재롱부리는 유령, 하트 모양 날리며 ‘고마워’하는 아이돌 연예인, “참 고마웠어요”라고 노래로 음성 지원이 되는 이모티콘까지. 상대에 따라 골라 보낸다.

추석이 다가온다. 참치 선물세트를 다섯 개 발주했더니 도착한 상품을 보고 점장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팔릴까?” 아니 그게, 팔려는 게 아니고…. 이번 명절에도 상여금을 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고, 도매가로 들인 선물세트를 직원들에게 나눠주려 한 것이다. ‘고마워’ 이모티콘은 아낌없이 발사해야지. 내년 설날에는 부디 더 큰 ‘뇌물’을 줄 수 있게 되기를.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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