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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리포트] “디지털성범죄 죄의식 없는 청소년 ‘떡잎’ 때부터 개입해야”

서울시 아하!센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성범죄 상담은 일반적으로 피해자 중심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이하 아하센터)’는 디지털성범죄 가해 청소년 상담사업을 병행한다.

아하센터에 가해 청소년 상담 의뢰가 늘어난 건 약 5년 전쯤부터다. 이명화 센터장은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아하센터에서 “어느 순간 ‘몰카(불법촬영)’ 가해청소년 상담 요청이 많아져서 ‘왜 이렇게 많아?’ 한 적이 있다”며 “디지털성범죄라는 용어조차 통용되지 않던 때였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디지털성범죄로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서 징계를 받거나 교사·학부모가 상담을 의뢰한 청소년들이었다. 많은 청소년들이 지인능욕 사진합성, 불법촬영, 불법촬영물 소지 및 유포 등 가해행위를 하면서도 큰 문제라고 여기지 못했다.


아하센터는 청소년 성교육·성상담 전문기관이다. YMCA가 2001년부터 서울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시립기관이다. 뿌리는 1984년 개소한 ‘서울YMCA 청소년성교육상담실’이다.

1990년부터 이곳에 몸담아오면서 청소년들의 성문화, 성범죄 등을 현장에서 체감해온 이 센터장은 가해 청소년 상담을 진행하면서 아동·청소년 디지털성범죄 가해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발방지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피해자 상담과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이 가장 중요한 건 틀림없지만 예방도 필요하다”며 “디지털성범죄 가해자를 보면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전자발찌 끊고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도 청소년 시기부터 계속 범죄를 저질렀다”며 “문제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지속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디지털성범죄 가해상담

아하센터는 2019년 9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디지털성범죄 가해 청소년 91명(남자 87명, 여자 4명)을 상담했다. 전문 상담원들이 가해 청소년 1명당 10회 이상 진행했다.

가해상담은 전문 상담사에게도 쉽지 않은 영역이다. 강자겸 상담팀장은 “피해자 상담은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게 상담의 주요한 부분인데, 가해자들에겐 가해행위가 명백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해주면서 재범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이 고민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하센터 상담실 문패 모습.

상담한 가해 청소년 96%는 가해행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친구의 신체 사진을 찍어 유포해서 문제가 되자 “웃겨서 올린 건데 왜 시비냐”고 하거나 단체 채팅방에서 음란물을 공유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유포한 것도 아니고 갖고만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경우도 있다.

가해 청소년들은 단순히 여성 외에도 아동·노인·장애인·비정규직 등 소수자 전반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곤 했다. 이를 교정하고 잘못을 잡아주는 것도 상담사의 역할이다.

디지털성범죄 가해청소년이 피해자로 바뀌기도 한다. 청소년이 SNS에서 ‘사진합성’ 광고를 보고 걸그룹 사진을 포르노와 합성해달라고 의뢰하면, 업체가 그 청소년의 SNS를 뒤져 개인정보를 캐낸 뒤 “가족과 친구들에게 포르노사진 합성 의뢰 사실을 알리겠다” 협박한다. 이후 굴욕적인 동영상을 찍게 하고, 이를 유포하겠다 협박해 돈을 갈취한다.

하지만 이 경우도 자신의 가해로 피해 입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강 팀장은 “피해자로서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자신의 가해행위를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워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일부 청소년은 죄책감에 매몰된다. 강 팀장은 “죄책감과 반성은 다른 개념이다. 죄책감을 갖는다고 다시 죄를 짓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며 “다른 삶을 살기 위한 반성으로 이끌어 청소년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디지털성범죄 가해상담에서는 부모 상담도 중요한 축이다. 그들 역시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강 팀장은 “아이가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이 집”이라며 “코로나 시대에 더 자주 머무는 곳이 됐는데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양육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도 부모”라고 지적했다.

부모 대부분은 말 못 할 당혹감을 느낀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 범행을 저지른 자식을 향한 분노, 자녀교육에 대한 막막함 등 여러 숙제를 안고 온다. 이들은 “우리 애가 어떻게 조주빈같이……”라고 절망하고 “이런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하냐”며 묻기도 한다.

상담사는 부모들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가정 내 상황도 살펴본다.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방식, 부모의 양육방식,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탐색하면서 문제점을 알아간다.

문제는 자녀의 디지털성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부모들이다. 대개 경찰이나 학교 등의 병과조치에 따라 학생·부모 모두 비자발적 상담을 받는 경우다. 보통 10~15회 정도 의무상담을 받는데, 상담사가 가해 청소년의 반사회성, 왜곡된 성관념 등을 우려해 추가 상담을 요구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명화 센터장은 “상담사들이 ‘이 청소년은 절대 10회로는 역부족’이라며 추가 상담을 요청을 하면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일부 부모는 ‘학교에서 10번만 하면 된다고 했다’ ‘얘는 공부가 중요한 시기’라며 거절한다. 그럴 때 상담사들이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이명화 센터장(왼쪽)과 강자겸 상담팀장이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 팀장은 “아무리 상담을 잘해도 아이가 살아갈 환경이 이전과 다르지 않다면 재범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보기 어렵다”며 “엘리트코스를 밟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정서적인 지지 등이 결핍된 상황을 부모들이 봐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1020 남성을 위한 성교육

아하센터는 올해부터 10대 ‘남자청소년 성교육 특별사업’을 진행 중이다. 10~2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안티페미니즘 논란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특화된 맞춤형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 센터장은 “기존의 성폭력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남성 청소년들에게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지 회의적인 경우가 많다”며 “남성 청소년들이 ‘남성성’에 대해 다시 보기를 할 수 있고, 일상에서 성에 대해 궁금증과 성평등의 가치를 고민해보는 채널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도 남성 성교육 활동가 3명이 전담했다. 성관계 동의, 성욕과 자위행위, 데이트 관계에서의 규범 등에 대한 토로, 평등한 연애 방법, 어릴 적부터 남성들에게 주입돼온 ‘남자라면 ~해야지’ 등 남성성으로 인해 남성들에게도 폭력이 되는 현실 등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초기 단계긴 하지만 반응도 긍정적이다. 흔히 “왜 우리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냐” “여가부에서 나왔냐?”라던 학생들은 교육 후 “페미니즘이 나쁜 건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구나” “남자선생님이 성교육을 해서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 센터장은 “결국 여성과 남성, 성별구분에 의한 갈등 프레임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포용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남성들도 맨박스(Man Box·사회가 규정한 남성성)라는 구조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걸 프로그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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