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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삶의 질 혁신이 필요하다

성경륭 농산어촌유토피아특위 위원장·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외국인이 보기에 한국은 ‘미러클’의 나라이기도 하고 ‘미스터리’의 나라이기도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러클인 이유는 한국이 한 세대 남짓한 짧은 기간에 초고속 성장과 함께 정치 민주화까지 이뤘기 때문이다. 미스터리인 이유는 한국이 경제적 측면에서는 세계 최상층 선진국에 도달했지만 삶의 질 영역에선 아직도 중진국 수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해마다 발간하는 ‘더 좋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 보고서 2020년 판에 따르면 지난해에 세계 10위의 국내총생산(GDP)을 실현한 한국은 삶의 질 지수에서는 OECD 30위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다 세부적으로 보면 지식과 역량, 주거 수준, 기대수명, 시민 참여, 개인적 안전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는 조사 대상 40개국 중에서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소득과 자산, 일과 삶의 균형, 일과 작업의 질은 중하위권에, 삶의 만족도와 사회적 관계, 환경의 질은 최하위권에 위치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왜 이처럼 초라한 결과가 나타나게 됐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연대 초기부터 발전국가가 채택한 ‘선성장-후분배’의 정책 기조가 지난 60여년을 거치면서 빈곤 탈피와 신분 상승을 갈구하는 모든 국민의 묵시적 동의 하에 만병통치약과 같은 지배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그리하여 성장은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불멸의 신화가 됐고, 발전국가 이후 등장한 모든 정부를 구속하는 ‘경로 의존성’의 강력한 기반이 되고 말았다.

성장 신화를 신줏단지처럼 모신 것은 비단 보수 정부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진보 정부도 모든 선거에서 높은 성장을 최고의 공약으로 제시했으며 분배와 복지 정책을 추진할 경우에도 그것이 성장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늘 앞장서서 강조했다. 이로 인해 민주화가 이뤄지고 세 번의 진보 정부가 집권한 뒤에도 선성장-후분배의 신화는 단 한 번도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장 신화에 집착해 분배와 복지를 소홀히 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선성장-후분배나 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따르는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가능하면 세입과 세출의 규모를 줄이려고 한다. 그러므로 경제 성장이 진행됨에 따라 소득 분배는 당연히 악화되고 보건·의료·복지·교육·주거·환경 등에 대한 투자는 현저히 낮은 수준에서 이뤄지게 된다.

한국은 이런 나라의 전형이다. 성장과 분배·복지의 균형을 추구하고 때로는 개선된 분배와 복지의 힘으로 성장동력을 끌어낸 북유럽 복지국가들과 반대의 길을 걸어온 한국은 필연적으로 GDP 세계 10위에 삶의 질 30위라는 모순적 국가가 되고 말았다. 앞으로 이 모순을 바로잡지 않으면 낮은 삶의 질이 삶의 불만과 불안을 가중시키고, 그것이 저출산을 가속화시켜, 최종적으로는 저출산이 저성장을 초래하는 하강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어 한국 사회를 몰락의 길로 내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예정된 실패 경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선성장-후분배 대신 ‘선분배-후성장’이라는 혁명적 노선을 추구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성장과 분배의 균형 또는 양자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적극적 혁신 노선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정책 노선은 장기적으로 적극적 조세재정 정책을 통해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상당한 규모의 조세재정을 확보하고, 이에 기초해 좀 더 적극적인 고용·소득·주택·복지·보건의료·교육·환경·문화예술·여가 정책을 추진해 삶의 질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정책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국가 운영을 경제 우선과 성장 우선에서 벗어나 경제와 사회의 균형,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루도록 하는 것은 정책 기조와 정책 전 분야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정부 정책의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 다음 정부에서는 국정 기조의 재설정, 재정지출 우선순위의 재설정, 고용·분배·복지 등 사회 분야의 투자 확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할 ‘국가사회경제조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해 국민이 삶의 여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추진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이 취해지면 일차적으로 그 혜택이 일반 국민에게 돌아가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기업 생태계와 지속적 경제 발전의 토대를 굳건히 하는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성경륭 농산어촌유토피아특위 위원장·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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