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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레몬마켓 된 대선판

한장희 산업부장


‘겉모습과 달리 품질은 좋지 않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과일이 있다. 바로 레몬이다.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그 속에 신맛을 숨긴 레몬은 경제학에서 열등재로 통용된다. 외관은 멀쩡한데 사고로 속이 곯은 차가 수두룩한 중고차 시장은 ‘레몬 마켓’이라 불린다.

실제 차 이력이나 성능 정보가 지금보다 훨씬 부족했던 과거에는 중고차 시장에서 바가지를 쓰는 일이 흔했다.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보다 파는 사람이 차의 상태에 대해 훨씬 많이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속아서 중고차를 사는 사람, 즉 정보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을 경제학에선 ‘역(逆)선택’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정치권에서도 자주 쓰인다. 지지하지 않는 정당 경선에 참여해 일부러 약체 후보를 뽑아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최근 대선 후보 경선 때 상대당 지지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느냐를 두고 국민의힘은 심각한 내홍을 겪은 바 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역선택이란 말의 용례는 경제 분야와 사뭇 다르다. 하지만 정치 영역, 특히 선거에선 중고차 시장처럼 ‘정보의 비대칭성’이 부른 역선택이 종종 발생한다. 후보자 이력, 소속 정당, 짧은 TV 토론이라는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투표장에 나서는 유권자가 상당수이고, 이 때문에 시고 쓴 레몬같이 함량 미달 후보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유능한 인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와 계파에 매이고 지역 감정에 얹혀가는 모습을 목격한 뒤 유권자 스스로 역선택을 했다고 자조(‘내 손가락을 분지르고 싶다’)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문제는 역선택 투표가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은 개인이 중고차를 잘못 선택하는 부담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는 점이다.

역선택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중고차 시장에선 부품 보증, 사고이력정보 제공, 성능 확인서 등을 통한 인증 강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갈수록 레몬 마켓으로 변질되는 분위기다. 투표로 잘못된 정책을 심판하고 제대로 된 리더를 뽑자고 매번 외치지만, 실상은 선거 캠프가 후보를 제대로 판단할 정보를 차단하고 심지어 역선택을 유도하기도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솔직히 밝히고 판단을 구하겠다는 태도보다는 당선만 되면, 권력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욕망만 들끓는다. 이 때문에 여야 후보들의 비전은 모호하고 허황되다. 이슈라고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사생활 들추기와 막말 잔치뿐이다. 같은 당 후보의 검증 요구는 ‘원팀론’을 들먹이며 손가락질하고, 언론의 검증에도 명확한 해명보다는 ‘정치공작’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물타기하는 데 급급하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 팬덤 문화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비웃는 것을 넘어 저주하고, 온라인 공간에서 패거리 지어 싸움질을 하고 있다. 이들의 행태는 다수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고 정치 혐오만 키우고 있다. 후보들과 선거캠프는 이들을 제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팬덤 눈치를 보고 심지어는 추종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자신의 중고차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차주들은 시장에 자신의 차를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중고차 시장엔 레몬, 즉 불량품만 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속성상 레몬밖에 없는 곳이라고 판단이 되면 사람들은 그 시장에 접근하지 않는다.

뽑을 후보가 안 보인다는 냉소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주변에 꽤 있다. 이는 대선판의 레몬 마켓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돼 자질 있는 후보가 공급되지 않고, 후보를 뽑는 유권자마저 큰 기대를 않는다면 레몬 마켓처럼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중고차는 안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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