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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어떤 서점에 대한 부고

김남중 문화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신문에는 매일 부고가 실린다.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죽음이라면 이즈음 불광문고 폐업 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진짜 서점, 진짜 서점인의 죽음이다.

불광문고는 1996년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문을 열어 25년간 지역 중형서점 역할을 하다 지난 5일 문을 닫았다. 불광문고는 은평구 대표 서점이자 문화공간이었고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또 전국 서점인들의 존경을 받는 곳이었다. 직원들 대우가 좋았고, 출판사 등 거래처와의 관계가 깨끗했다. 처음부터 법인으로 출발해 경영도 투명했다.

장수련 점장은 지난달 중순 페이스북을 통해 폐업 소식을 밖으로 알렸다. “25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왔던 불광문고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정성 들여 만들어진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보람으로 지내왔던 25년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버텨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책을 판매하여 얻는 수익률로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기가 버거운 날들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소식을 알게 된 주민들은 은평구청에 불광문고를 살려 달라는 청원을 제기했고 단기간에 1600명 이상이 참가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이 나서 서점과 건물주 양측을 만나 불광문고를 지속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했지만 실패했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대폭 낮춰줄 수도 없었고, 구청이 한 서점에게 특혜 지원을 할 수도 없었다.

서점이 문을 닫는 날, 최낙범 대표는 희끗한 머리칼을 단정하게 빗고 문 앞에 서서 손님들에게 카네이션을 한 송이씩 건넸다. 그리고 다음 날 오랜 동료였던 서점 대표 몇몇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불광문고의 장례식을 지역 주민들이 거하게 치러 주셨습니다. 모든 분들이 염려해 주신 덕분에 어제 영업을 종료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최 대표는 지역 시민사회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최 대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워진 서점을 무리해서 끌고 가는 대신 존엄한 죽음을 택했다. 적자는 2015년 이후 계속됐고 직원들 임금도 3년째 동결한 상황이었다. 창업 후 처음으로 직원들을 내보내기도 했지만 더 버티긴 어려웠다. 최 대표는 폐업 계획을 직원들에게 미리 알렸다. 그리고 거래처와 손님, 직원들에게 단 한 푼의 피해도 가지 않도록 꼼꼼하게 정리했다.

경남 진주에서 35년간 서점을 운영해온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는 최 대표에 대해 “책에 대한 애정이 컸을 뿐만 아니라 책으로 맺어진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애정을 많이 쏟았고, 상도의를 아주 잘 지킨 분이었다”며 “불광이 25년간 영업을 하는 동안 불광에 대한 나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서점업에서 물러나지만 직원들은 불광문고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서점을 다시 열겠다는 직원들에게 최 대표는 법인 명의를 넘겨주고 불광문고라는 이름도 그대로 사용하도록 했다. 대표자만 바꾸고 직원들이 서점을 계속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불광문고 시즌2를 책임진 이는 장 점장이다. 22년간 불광문고에서 근무한 그는 직원들과 함께 서점을 다시 시작할 방법을 찾고 있다. 230평이던 서점 규모를 100평 이하로 줄일 생각인데 아직 적절한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높은 임대료가 역시 문제다.

장 점장은 “서점이 비전이 있어서 다시 하겠다는 건 아니다”라면서 “불광동이 제 고향이고 이 동네에 책다운 책을 만날 곳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밥은 근근이 먹고 살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불광문고는 다시 문을 열 수 있을까. 시즌2의 시작을 기다리며 그들을 응원한다.

김남중 문화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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