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소설로 돌아온 한강 “이 소설이 날 구했다”

[책과 길]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소설가 한강이 지난 7일 유튜브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새 소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한강은 이날 1시간 가량 기자들과 문답을 가지며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문학동네 제공

소설가 한강(51)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가 나왔다. ‘흰’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 소설이다. 2014년 ‘소년이 온다’ 출간 즈음 꾸던 꿈에서 출발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7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한강은 지난 7일 유튜브로 진행한 기자 간담회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저 자신도 완성될 수 있는 소설인가 의문을 품었던 게 사실”이라며 “오랜 시간 썼기 때문에 책이 만들어져 제 손에 쥐어졌다는 게 감사하고 뭉클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그동안 지금 무슨 소설을 쓰고 있느냐고 자꾸 물었는데, 그때마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거나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 어떨 때는 제주 4·3사건을 그린 소설이라고 얘기했다”면서 “그중 하나를 고른다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로 시작되는 소설의 첫 두 페이지는 꿈에 대한 묘사다. 한강은 2014년 6월 말쯤 지난 밤의 이상하고 강렬한 꿈을 기록한 이 두 페이지를 써놓고 어쩌면 소설의 시작이 될 수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차례 시도에도 소설은 써지지 않았고 그렇게 4년 정도가 흘렀다. 그 사이 작가는 ‘흰’을 발표했고, ‘눈 3부작’의 두 작품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2015년)과 ‘작별’(2018년)을 썼다. 오랫동안 애를 먹이던 한강의 이상한 꿈은 제주도의 기억과 만나면서 비로소 소설로 나아가게 된다.

“1990년대 후반에 제주 바닷가에 월세방을 얻어서 3~4개월 혼자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하루는 주인집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러 읍내에 같이 나가게 됐는데, 골목의 어떤 담 앞에서 할머니가 멈추시더니 ‘여기가 4·3 때 사람들이 총 맞아 죽었던 곳이야’라고 말씀하셨다. 눈부시게 청명한 오전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그 사건이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실감으로 다가왔다. 그날의 기억이 그 꿈과 만나면서 소설을 쓰는 게 가능해졌다.”

제주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여명이 학살된 1948년 4·3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전작 ‘소년이 온다’와 어쩔 수 없이 겹친다. 한강은 “저는 절대로 제주 민간인 학살을 쓸 마음이 없었다”며 “의도한 것도 아니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이상한 각성의 순간 같은 것이 있었고,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소년이 온다’와 이 소설이 어떻게 보면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인정했다.


한강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는 이번 소설을 완성함으로써 ‘5월 광주’와 ‘제주 4·3’을 둘 다 소설화한 이례적인 작가가 됐다. 한강이 2000년대 이후의 현대적 감각과 문장으로, 기존의 고발적 방식과 아주 다르게 두 사건을 그려냈다는 점, ‘채식주의자’로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으로도 읽히는 작가로서 두 사건을 얘기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한국 현대사의 두 비극적 사건을 들여다보고 쓰면서 2010년대를 통과해온 경험은 그에게도 깊은 흔적을 남긴 듯하다. 한강은 “소설을 쓰면서 작가는 변형되고,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소년이 온다’ 이후의 제 삶은 그 전의 삶과 다른 게 됐고 (그 작품을 쓰면서 갖게 된) 악몽이나 질문은 제가 평생 갖고 가야 하는 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악몽이나 죽음의 깊이가 제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그 상태로 이번 소설과 함께 지내면서, 이번 소설을 건너면서, 저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다”며 “이 소설이 나를 구해줬다는 마음이 든다”고도 했다.

소설에는 세 명의 여성이 나온다. 화자이자 소설가인 경하, 그의 친구이자 다큐멘터리스트인 인선,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다. 이야기는 경하에서 시작돼 인선으로 이동하고 결국 정심에게로 향한다.

경하는 급히 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인선이 입원한 병실로 찾아간다. 인선으로부터 집에서 키우는 새가 죽기 직전이니 가서 살려주라는 요청을 받고 제주 중산간으로 향한다. 거기서 4·3과 얽힌 인선의 가족사와 만난다.

한강은 “경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고 경하와 인선이 연결되고 인선이 어머니와 연결되고 어머니는 죽은 사람들과 이어져 있다”면서 “이렇게 연결된 실에 전류가 통하면서 생명이 도는 걸 상상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걸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심은 4·3에 휘말려 실종된 오빠의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죽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 스물다섯에 혼자 유해를 찾기 시작해 무릎 관절염을 앓는 일흔넷에도 찾아 헤매고 다녔다. 물론 실패했고 정심은 죽었지만 그렇다고 끝나지는 않았다. 정심이 남긴 유물을 통해 딸 인선에게로 이어지고 경하에게도 전해진다.

‘작별하지 않는다’란 제목은 각오를 표현한 것이다. “종결하지 않겠다,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겠다, 끌어안고 계속 걸어가고 나아가겠다, 그런 의미로 생각했다”고 작가는 말했다.

목공 작업 중 손가락 마디를 잘린 인선이 병원에서 봉합수술 후 손가락 신경을 잇기 위해 주사 치료를 받는 장면은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보여준다. 인선은 봉합 부위에 주삿바늘을 찔러 피를 내는 치료를 3분에 한 번씩 해야 한다. 그렇게 24시간 내내 3주를 이어가야 한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한강은 “손가락을 다시 붙이려면 고통스럽지만 상처에 바늘을 찔러 넣어야 되고 통증을 느끼게 해야 하고 계속 살아있게 하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우리가 껴안기 어려운 걸 껴안을 때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이 죽음 대신 생명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담아 그 장면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심에 대해 쓰면서 이 소설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느꼈다”며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소년이 온다’ 이후로 하게 됐고 이 소설을 쓰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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