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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뉴컬렉터의 등장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진영 작가 작품 있나요? 꼭 하나 사야 해요.” “태우 작가는요? 작품 더 없어요?” “임솔지 작품 예약할 수 없나요? 기다릴게요.” 작품 구매 신청이 쏟아졌다. 지난주에 열었던 브리즈 아트페어 이야기다. 특히 세 작가는 고객 성화에 공식 출품작 외에도 스타일이 조금 달랐던 이전의 작품, 가족에게 선물했던 작품까지 회수해서 들고 나왔지만 작품을 벽에 걸기도 전에 작품이 판매됐다. 현장 판매뿐 아니라 전화와 메일로 들어오는 문의도 많았다. 이번 아트페어를 위해 솔드아웃 스티커를 300장 준비했는데, 며칠 사이 340점 이상을 판매했다. 그림 사기 위해 줄 서는 풍경을 보게 되다니!

2012년 우리가 브리즈 아트페어를 시작한 이후 드디어 시장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느끼고 있다. 젊은 고객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처음으로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 한 번에 여러 점의 작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산과 광주 등지에서 오는 연락들도 있었다. 주식, 코인,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방식으로 돈을 번 젊은 세대가 미술품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취향을 위한 소비를 하는 것, 내가 늘 바라던 바다. 186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인상파의 부흥을 이끌었던 것도 기존의 부자나 컬렉터가 아니라 새로운 직업으로 돈을 벌고 여행을 하며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 신흥 멋쟁이들이었으니까.

이러한 시장의 분위기는 예술가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성장하며 팬층을 쌓아온 허승희, 최지현, 유지희, 만욱, 이다겸, 장수지 작가의 작품도 여러 점 판매가 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기존의 컬렉터들이 뿌듯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0세 이하 작가 가운데 감만지, 임서현, 정원 작가는 매일 아침 빈 벽에 새로운 작품들을 다시 채워 넣기 바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관람객들의 반응에 기뻐하며 의욕을 불태우는 예술가를 보는 일은 나에게도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최근의 붐이 재테크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면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 작품 가격이 오를까요? 이 작가 반응이 좋은가요? 얼마 정도 후면 리세일 가능할까요?” 뜨거운 열기만큼 질문도 많았다. “그건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닐까요. 그냥 마음이 가는 작품을 사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도로 답했지만, 예를 하나 들고 싶다. 이번 장수지 작가의 출품작 중에 2009년 작이 하나 있었다. 2011년에 내가 기획하고 초대했던 작가의 첫 개인전에도 나왔던 작품인데 그때 가격이 10만원 정도였던 소품이다. 10년이 지난 올해 가격은 50만원. 갑자기 뛴 것이 아니라 매년 꾸준히 조금씩 올라서 이뤄진 가격이고, 초기작이라는 희귀성 때문에 제일 먼저 판매됐다.

고객이 10년을 기다릴 수 있고, 작가가 10년을 버티며 성장한다면, 작품 가격이 5배 정도 오르는 일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처음부터 큰 수익을 기대하고 작품을 사는 경우에는 10년이란 긴 시간을 기다리기가 어렵다. 구매자들의 응원이 없다면 작가 역시 10년을 계속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재테크를 염두에 두고 미술 작품을 구입한다 하더라도 주식에서의 가치투자처럼 장기간을 각오하고 작품을 구입하면 좋겠다.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곁에 두고 즐긴다면 지루하지 않은 시간일 것이다. 작품 가격이 오르지 않아도 그리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의 시각적 매력뿐 아니라 작가가 어떤 관심사와 근성을 가졌는지 대화도 나누어 보고, 작업이 매년 발전하는지 지켜보고, 변화의 시기마다 추가 구매도 하며 응원해야 한다. 어느 날은 미술시장이나 미술사에 관한 책을 보며 공부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예술이 취미가 되고 일상에 녹아들어 어떤 투자보다 즐겁고 충만한 재테크가 되지 않을까. 물론 나는 뉴컬렉터의 등장이 누구보다 반갑다. 내년에 다시 만납시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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