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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사라지는 말

김경택 이슈&탐사1팀장


김소월은 ‘왕십리’라는 제목의 시에서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라고 말한다. 시의 배경은 희망이 별로 안 보이는 일제강점기 장마철이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이 비에 벌새가 나른해져 울고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 우는 우울한 정황이 이어진다. 시인은 축 늘어진 감정 상태를 불러온 장마가 끝나기를 바란다.

과거와 달리 이제 날씨는 슈퍼컴퓨터로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강수 패턴은 크게 바뀌었다. 지금은 장마철을 가리지 않고 폭우가 쏟아지거나 마을 하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감당하기 어려운 비가 일부 지역에만 갑자기 퍼부을 수 있다. 작년에는 이례적으로 50일 넘게 장마가 지속되는 등 장마 기간을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김소월이 왕십리를 구상하던 때 왕십리에 내렸을 비는 오늘 오는 비와는 상당히 다르다.

시인이 이 시를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시어가 많이 바뀔 것 같다. 우선 ‘(비는)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라는 시구를 그대로 다시 쓰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제는 비가 그런 식으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쳐 놓더라도, 음력 초하루와 보름을 아울러 이르는 삭망(朔望)이라는 단어를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달의 모양으로 날짜를 세어 날씨를 예측하던 시대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농경사회에 유용했던 말이 기상이변을 더 이상 놀랍게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로 넘어오면서 별 쓸모가 없어진 셈이다. 일부러 ‘난해시’를 만들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오랫동안 쓰지 않는 말은 조용히 사라진다. 예컨대 토큰이나 회수권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대신 지금은 버스카드라는 말만 쓰이고 있다. 신제품이 낡은 물건을 대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가 점차 변화하면서 사라지는 말도 많다. ‘핑계 핑계 도라지 캐러 간다’는 말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이 말은 적당한 이유를 찾아 둘러대면서 자기 볼일을 보러 간다는 뜻이었다. 여기에는 도라지 캐기와 같은 일을 나가려는 게 아니라면 집 밖을 맘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불평등한 현실이 깔려 있었다. 이 말은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에 사라졌다.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비정상적 말은 그 말을 만들어낸 비정상적 상황이 정상화하면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지금 엄연히 존재하는 말인데 대부분 존재 사실조차 모르는 말도 있다. 있는데도 없는 것과 같은 홀대를 견디는 말 가운데 묵자(墨字)라는 단어가 있다. 먹으로 쓴 글을 가리키는 묵자는 점자(點字)와 나란한 말이다. 점자는 손으로 읽을 수 있도록 볼록 튀어나온 점으로 만들어진 특수문자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읽고, 비장애인들이 묵자를 읽는 것이다. 황정은의 소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 화자는 40여년간 묵자라는 말을 몰랐다면서 ‘우리를 둘러싼 기록문자들, 우리가 보는 언어들이 전부 묵자인데 그것을 묵자라고 칭한다는 것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라고 묻는다. 또 ‘우리는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라며 ‘묵자의 상태가 상식이라서 그걸 부를 필요도 없어, 그것이 너무 당연해 우리는 그것을 지칭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말은 말을 주로 쓰는 사람이 서 있는 사회적 위치를 그대로 물려받는다. 소수의 사람들만 쓰는 말은 나중에 대신할 다른 말을 찾지도 못한 채 사실상 사라진다. 말할 기회도 별로 없는 약자는 결국 자신의 말조차 잃어버릴 수 있다. 문득 ‘십리’를 가고 또 가도 그치지 않는 장맛비를 맞고 있는 왕십리의 시인도 영원히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비정한 현실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경택 이슈&탐사1팀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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