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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빅테크 단속과 금융혁신

고세욱 경제부장


지난주 금융계 최대 화제는 네이버·카카오 규제였다. 금융 당국은 지난 7일 빅테크(대형 IT기업)의 각종 금융상품 추천 서비스가 단순 광고가 아닌 ‘중개 행위’라며 25일부터 서비스를 종료할 것을 요구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은 ‘플랫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 토론회’(약칭)를 열고 카카오의 문어발식 경영을 성토했다. 사람들은 안다. 정부와 여당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을. 플랫폼 기업을 손보겠다는 시그널에 8일부터 카카오와 네이버 주가는 추풍낙엽처럼 추락했다.

빅테크가 자초한 감이 없지 않다. 소비자 편의를 무기로 각종 분야에 진출해 몸집을 불린 뒤 수수료 및 가격 인상의 속내를 비친 게 소비자와 골목상권의 반발을 샀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지난달 카카오 택시의 배차 서비스인 스마트 호출 요금을 1000원에서 최대 5000원까지 인상하려 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도 개운치가 않다. 빅테크가 금융상품 추천 서비스를 펼치던 초기에 별말이 없다가 여당의 토론회와 맞물린 시점에 목소리를 높였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빅테크 기업들도 동일 기능, 동일 규제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작 ‘동일 기능, 동일 규제’는 약 1년 전부터 금융업계에서 ‘빅테크 특혜’를 우려하며 당국에 요청한 사안이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업계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빅테크에 각종 혜택을 주던 당국이 돌연 태세 전환한 것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중진국 이상 중 우리나라만큼 금융 선진화 혹은 금융 혁신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국가는 찾기 힘들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이다. 새로운 금융 조류나 글로벌 흐름이 나타날 때는 “이것만이 살 길”이라며 밀어붙이다가 소비자의 불만이나 조금의 장애만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외면하곤 한다. 과거 노무현정부가 주창한 ‘동북아 금융허브’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거나 4년 전 닻을 올린 ‘초대형 투자은행(IB) 구축’이 여전히 더딘 이유다.

그래도 노무현정부부터 박근혜정부까지는 금융을 산업으로 육성시키자는 마인드라도 있었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이마저도 찾기 어렵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론에 매몰되다 보니 은행을 서민과 자영업자에게 이자 장사나 하는 적폐급으로 간주하는 모양새다.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대출금리를 낮추라거나, 인터넷은행에 중금리 대출 위주로 운용하라는 등 관치성 주문이 넘친다. 이러는 사이 2019년 말 기준 세계 100대 은행 중 우리나라 최고 순위는 61위(KB국민은행)에 그쳤다. ‘금융의 삼성전자’ 기대는 어불성설이다.

아내가 2004년 국민은행에서 명예퇴직했을 때 받은 자사주들을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약 5만원대 후반에 팔았다. 17년이 지난 지금 KB금융 주가는 5만1000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업계 1위 주가가 십수 년 후에도 제자리를 걷거나 퇴보한 종목이 몇이나 될까. 관치는 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

혁신과 창의, 모험에는 대가가 있게 마련이다. 약간의 잘못만 있어도 ‘원위치’를 외치면 발전에 기약이 없다. 우리 금융의 역사가 딱 이렇다. 모든 업종이 글로벌 경쟁력을 꿈꿀 때 언제까지 나 홀로 골목대장에 안주해야 하나. ‘동일 기능, 동일 규제’가 빅테크를 오프라인 은행권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게 아닌 상향 평준화로 나아가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을 할 때다. 탐욕은 시스템으로 제어하되 빅테크에 허용했던 각종 규제완화를 전통 금융권으로 확대해봄 직하다. 금융 규제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당국이 청와대 출신 무자격 낙하산의 금융공기업 투하를 막는 데 쏟는다면 혁신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금융주 장기투자자들도 이제는 웃어야 하지 않겠는가.

고세욱 경제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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