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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장기집권 후 단명 징크스

천지우 논설위원


1955년 출범 이후 단 두 차례만 실권하고 60년 가까이 독주해온 일본 자민당의 역사를 보면 총리가 장기 집권한 뒤에는 후임 총리가 단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2001~2006년) 이후 들어선 아베 신조(1차 집권),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내각은 모두 1년 만에 무너졌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1982~87년) 이후에도 5년9개월 동안 4명의 총리가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사토 에이사쿠 내각(1964~72년)에 이어 집권한 5명의 총리도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장기 집권 후 단명’은 일본 정치에서 하나의 패턴, 혹은 징크스가 됐다.

장기 집권 후 새로 들어선 정권들이 단명한 것은 당시 돌발 악재가 터지는 등 각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랬을 테지만, 공통되는 이유도 있다. 총리 한 명이 오래 집권하는 동안 차기 대권 주자들이 많이 쌓인다는 점이다. 이들끼리 치열한 골육상쟁을 벌임에 따라 집권 기간이 짧아지는 것이다.

역대 최장수 총리 아베 신조(2차 집권 2012~2020년)의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 총리도 이 징크스를 피해가지 못하고 1년 재임에 그치게 됐다. 이제 그와 경쟁하던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과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 등 차기 주자들이 대권을 놓고 격돌할 참이다.

일본 정가에는 정권의 단명과 관련한 또 하나의 징크스가 있다. ‘총리가 공저(公邸·총리 숙소)에 들어가면 단명한다’는 것이다. 1932년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가 암살된 곳이어서 귀신을 봤다는 말이 나오는 등 많은 후임자들이 께름칙하게 생각하는 데다, 실제로 이곳에 입주한 뒤 정권이 오래가지 못한 사례가 많아서 생긴 괴담이다. 아베 전 총리의 경우 공저에 들어갔던 1차 집권 때는 단명했고, 자택에서 출퇴근한 2차 집권 땐 최장 집권 기록을 세웠다. 스가 총리도 이 징크스를 의식해서인지 공저에 들어가지 않고 중의원 기숙사에서 지냈지만 장기 집권의 꿈을 이루진 못했다. 괴담은 괴담일 뿐이었던 셈이다.

천지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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