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두상달 (27) 북, 최신 유행 청바지 받아보곤 “우리가 거지냐” 항의

계속된 흉년으로 식량과 옷 고갈된 북한에
여러 단체서 기증된 옷과 간장 실어 보내
교류 통해 ‘통일의 묘약’ 바라는 마음 전달

‘북한 동포 겨울나기 사랑의 옷 보내기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거리에서 옷 보내기 운동을 알리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1997년 10월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전국에서 보내온 옷을 컨테이너에 싣는 모습.

우리나라도 6·25 전쟁 후 구호물자를 받아 연명했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던 가난한 시절을 살았다. 1990년대 북한은 계속되는 흉년으로 식량뿐 아니라 입을 옷이 없어 혹한을 피할 길이 없었다. 비닐과 나일론을 섞어 만든 ‘비날론’이라는 섬유가 있었는데 이마저도 전력난으로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생산이 중단됐다.

우리나라는 옷장을 열어보면 유행이 지났거나 치수가 맞지 않은 옷이 몇 벌씩 있다. 이런 옷을 폐기하거나 소각하려면 공해는 물론이고 비용까지 발생한다. 이런 옷을 모아 북한에 보내면 겨울을 나는 데 소중한 방한 물품이 된다. 북한에 옷 보내기 운동이 시작된 이유다.

97년 10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앞장서서 기독교와 불교 등 6대 종단과 28개 시민단체가 ‘북한 동포 겨울나기 사랑의 옷 보내기 운동본부’를 출범했다. 나는 본부장을 맡았다.

많은 교회와 단체가 호응했다. 마침 나는 삼성물산의 한 의류 브랜드의 대형 할인매장도 운영하고 있어 그 관계로 삼성물산이 컨테이너 3개 분량에 해당하는 의류 3만5000점을 기증해 줬다.

남북한은 정치적으로 수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옷을 통해 전하는 사랑의 메아리가 저들의 마음을 녹여 통일의 묘약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하지만 북한은 절대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다 나진항을 통해 한 컨테이너 분량의 옷을 보냈는데 그걸 받은 뒤 저들의 마음이 바뀌었다. 옷이 너무 좋았던 것이었다.

결국 4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37개에 의류 120만벌을 실어 보냈다. 간장도 한 컨테이너 보냈다. 서울 사랑의교회는 새 옷을 사 주머니에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쪽지를 넣었다. 무채색의 칙칙한 색깔의 옷만 입다가 화려한 색상의 좋은 재질의 옷들은 그 자체로 저들에게는 문화충격이었다.

북한에 대표단이 갔을 때 큰 항의가 있었다. “우리를 뭐로 아느냐. 우리가 거지냐”는 것이었다. 보낸 옷 중 청바지가 있었는데 무릎이 찢어져 있거나 바지 끝단이 너덜너덜해진 옷들이 문제였다. 젊은이들이 멋을 내려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인데 그걸 몰랐던 것이었다. “젊은이들이 일부러 그렇게 해서 입는다”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청바지를 염색한 뒤 작업복으로 만들면서 겨우 수습했다.

한번은 5개 은행 노조위원장들과 북한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나는 단장으로 이들을 인솔했다. 농협에서 2억원을 들여 젖염소 착유기를 기증했는데 일정 중 이 농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기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전력난 때문이었다. 그걸 본 한국 방문단 모두가 실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심지어 묘향산 지하에 있는 김일성기념관을 구경하던 중 정전이 돼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탈출했던 일도 있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있다. 북한의 모든 문제는 체제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무조건 지원하는 게 해답이 아니라고 생각해 대북사업을 접었다. 공산주의는 불행과 가난을 나누어주는 결정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주여. 총과 칼을 쳐 보습을 만들고 복음으로 한반도가 하나 되게 해 주옵소서.”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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