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재 목사의 ‘생명 설교’] 새 생명을 얻은 자의 모습

에베소서 4장 30절~5장 2절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가 새 생명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이렇게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마귀에게 틈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성령의 인치심이 희미해질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 이때 성령이 오셔서 내주하신다. 이는 마치 계약 문서에 인장을 찍는 것과 같다. 때때로 우리는 받은 구원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고 긴가민가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에게 부인할 수 없는 확신을 준다.

하지만 이런 인치심도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 길어지면 소멸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 경고하는 대로 말이다. 마치 계약서에 도장이 지워지고 사인한 부분이 훼손되면 계약서가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새 생명을 얻은 자라면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인격이신 성령과 늘 교제해야 한다. 성령과 사귐을 갖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또 새 생명을 얻은 자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은 성형수술처럼 일시에 되는 것이 아니다. 학식을 많이 쌓아서, 인격 수양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만든 이 땅의 다른 신들은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을 제시한다. 그것을 미끼로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며 인간의 삶을 제한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같이 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부르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자녀 됨이라는 축복을 주신다.

닮는 것은 태어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식이 부모를 닮은 것은 부모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를 의지로 선택할 수 없다. 아기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의 출생을 받아들일 뿐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다. 우리를 향해 “내가 너를 낳았다” 하시며 자녀 삼아 주셨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다. 우리가 무엇을 했기에, 왜 그와 같은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새롭게 태어나 새 생명을 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의 새 출생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본받는다는 것을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무언가로 생각한다. 세상 종교의 틀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려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방법이 믿음이라고 말한다.

믿음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삶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고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리듯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그렇게 된다. 믿음으로 자녀 됨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자들이라면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생의 참된 목표를 이뤄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친절과 긍휼, 용서를 통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는 늘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으로 행하자. 이를 통해서 우리가 새 생명을 얻은 자임을 이 땅의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자. 그리고 그들에게 새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에 있음을 알게 하자.

(미국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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