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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인간의 진자운동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어떤 사람이 마돈나의 이상에서 시작해 소돔의 이상으로 끝나고 만다는 거야. 더욱 무서운 건 이미 영혼 속에 소돔의 이상을 품고 있는 인간이 마돈나의 이상을 부정하지 않고, 그 이상 때문에 가슴을 불태운다는 거지.” “마돈나의 이상을 가진 사람이 소돔의 이상으로 끝을 맺고 소돔의 이상을 가진 사람이 마돈나의 이상을 불태운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정념에 사로잡힌 맏아들 ‘드미트리’의 절규다.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의 나를 떠올려본다. 마흔 살, 쉰 살, 예순 살, 여생의 나를 떠올려본다. 어느 세월의 굽이에서 나는 마돈나의 이상을 버리고 소돔의 이상으로 몸과 마음이 바뀌었을까? 부모, 형제, 친인척, 이웃, 친구, 선후배, 스승, 연인, 해, 달, 별, 물, 불, 공기, 흙, 구름, 바람, 나무, 산, 강, 바다, 언덕, 길, 꽃, 풀, 벌레, 밥, 술, 옷, 학교, 직장, 여관, 노래방, 영화, 핸드폰, 기차, 전동차, 기차, 외국…. 우주 안의 편재하는 것들과의 관계가 나를 만들어 왔다. 삶의 종착에 이르는 날, 내 삶과 생의 추는 진자 속 마돈나와 소돔 사이 어디에서 멈춰 있을 것인가?

‘이완용 평전’(김윤희 저, 한겨레출판, 2011)을 읽은 적이 있다. 명문 반가에 양자로 들어가서 스물다섯에 과거에 급제한 이완용의 관직 생활부터 을미사변이 벌어졌을 때 아관파천을 감행하여 성공시킨 이야기와 을사조약 체결 즈음부터 조약 체결에 나선 을사오적과 함께 매국노로 호명된 이야기 등등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사람의 평생이 시대 환경에 의해 어떻게 굴절되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처럼 그는 처음부터 매국노가 아니었다. 그 당시에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국가적 현실을 바꾸기보다는 상황에 민첩하게 적응하는 합리성과 실용성을 갖춘 관료였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살리기 위해 조선을 둘러싼 원근의 강대국을 오가는 곡예정치를 계속하다가 최종적으로 친일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요컨대 그의 친일 행위의 배경에는 나라의 운명보다는 자신의 가문과 그를 총애하는 고종에 대한 충성심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친일에 들어선 이후에는 전혀 동요하는 모습 없이 오로지 일본 천황을 위해 그의 수족이 돼 일로매진하게 된다.

매국의 길을 걸었던 이완용에게서 우리 시대의 민낯을 보는 일은 괴롭고 쓸쓸하다.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할 줄 모르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는 지식인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오늘날의 이완용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느 지식인이든 처음부터 곡학아세와 견강부회를 자처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불가피한 계기를 통해 그들은 사적 이익에 매몰되게 되고 훼절분자가 된다. 요컨대 처음에는 마돈나로 생을 영위했으나 소돔으로 인생을 결과 짓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지식인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반면교사로서의 교훈을 배우고 익히면서도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매우 인색한 것 같다. 일본의 저명한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저서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에서 메이지유신 시대의 작가들이 바깥 현실(당시 일본이 처해 있던 내외적 상황)보다 주체 내면의 기억과 정서와 경험 등으로 일본 홋카이도 풍경을 언어화했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당면해 있던 가혹한 현실을 보지 못했거나 왜곡시켰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러한 작가들의 현실에 대한 방임으로서의 미적 표현 행위가 의도와 상관없이 일본 제국주의에 힘을 실어줬다고 말한다. 지식인들의 언행이 비난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성의 참된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를 성찰해본다.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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