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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이 죽음은 누가 책임지나

정승훈 사회부장


언론에 보도되는 죽음은 상당수가 사건이나 사고에서 파생된다.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이거나 안타까운 사고의 희생자가 대부분이다. 많은 죽음에는 가해자가 있고, 책임자가 존재한다. 가해자에게는 죄를 묻고 책임자에게는 왜 죽음을 막지 못했냐고 힐난하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제도를 바꾸고 법을 제정해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이 이어진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는 사뭇 양상이 다른 죽음이 눈에 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 같은 이들, 어쩌면 본인의 상황이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이들의 죽음이다.

20년 넘게 맥줏집을 운영하던 50대 자영업자의 죽음은 상징적이다. 20여년 전 맥줏집을 차리면서 자영업을 시작한 뒤 식당까지 운영하며 영업점을 4곳으로 늘렸다. 인덕이 두터워 직원들에게 업소 지분을 나눠줬다. 동종업계에서는 드물게 직원들은 주5일제 근무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월세를 내고 직원 월급을 주기조차 힘들어졌다. 그의 마지막 행적은 퍽 가슴 아프다. 숨지기 전 남은 직원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본인이 거주하던 원룸의 보증금까지 뺐다.

대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던 40대 자영업자는 신천지발 집단감염을 겪은 후 업종을 꼬치집으로 변경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저녁 장사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식사도 가능한 업종으로 바꾼 것이다. 가게 앞에 간이 테이블까지 놓으면서 의욕을 보였지만 오후 9시로 영업이 제한되자 예약은 줄줄이 취소됐다. 함께 일했던 직원도 내보내고 아내와 둘이 운영하며 버티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토록 공들였던 매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가게 자리는 한동안 비어 있다가 최근 새로운 점포가 들어섰는데 직원 없이 운영되는 인형뽑기 가게였다. 그의 가게 옆 점포에도 아이스크림 무인판매점이 문을 열었다.

이들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이유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의 죽음이 이어지는데도 죄를 묻거나 책임을 추궁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들의 죽음은 통제할 수 없는 감염병 상황에서 빚어진 개인의 잘못된 선택인 것일까.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함께 살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 이웃의 마지막을 그저 이렇게 지켜보기만 해도 괜찮은 걸까.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와 소상공인연합회는 14일 기자회견에서 “벼랑에 내몰린 소상공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정부에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 참석자는 “자영업자들이 마지막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매일 쏟아진다”며 “이제는 ‘어렵다’ ‘힘들다’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살려주세요’가 됐다”고 했다.

시간을 들여 안전성을 확인한 후 신중하게 결정한 백신 구매 과정이 여전히 적절한 조치였다고 하는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이들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던, 불운의 한 사례일 뿐이다. 상당수 방역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해결책은 백신밖에 없다”며 백신 확보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감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조치는 불가피했다고 해도 백신 구매에 더 적극적이지 않았던 그때의 판단은 옳았던 걸까. 백신을 좀 더 일찍 더 많이 확보했더라면 그래서 백신 인센티브가 단 몇 달, 단 몇 주라도 일찍 시행됐다면 이들의 죽음이 훨씬 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가슴을 짓누른다. 최소화할 수 있었던 보통 사람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은 ‘사회적 타살’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죽음을 막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책임에 마음이 무겁다. 동시대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 한 구성원으로서 삼가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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