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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교육 통해 수수께끼 같은 나라에 부흥의 꽃 심다

[서윤경 기자의 선교, 잇다] 페루 방도호 선교사

방도호(앞줄 오른쪽 세 번째) 선교사가 페루 수도 리마에 세운 ‘파밀리아 데 디오스’ 교회에서 2018년 성경읽기 프로그램인 ‘바이블타임’에 참여한 50여개 교회·단체 사역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방 선교사 제공

햇수로 25년간 페루에서 사역한 선교사는 여전히 페루를 ‘미지의 나라’라 불렀다. ‘수수께끼 같다’고도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총회세계선교회(KPM) 소속 방도호 선교사는 1997년 2월 페루 리마공항에 도착했다. 낯설기만 한 페루에서 방 선교사가 처음 마주한 건 구걸하는 거지였다.

지난 10일 경기도 김포시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페루를 선교지로 선택한 계기부터 이야기했다. 현재 수도 리마에서 ‘파밀리아 데 디오스’ 현지인 교회를 섬기는 그는 아내의 치료와 지난 7월 한동대에서 열린 한인선교사대회 참석을 위해 한국에 왔다.

“교회도 개척하고 대형교회도 섬기다가 가르치는 데 헌신하기 위해 30대 후반 유학을 갔어요.”

영국에서 기독교교육학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그는 페루에서 온 30대 변호사를 만났다.

방 선교사는 “NGO단체를 통해 영국에 왔다는 그는 페루 기독교단체 관계자였다”면서 “대화 중 ‘당신은 목사를 교육하려고 공부하는 게 아닌가. 페루의 목사들 대부분은 신학 공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갑자기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변호사의 돌발 행동은 그의 도전 의식을 일깨웠다.

“저는 소아마비로 장애가 있어 선교는 생각도 안 했어요. 박사과정을 마치면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할 계획이었죠. 변호사의 절실함을 봤고 전율을 느꼈어요.”

마음이 급해졌다. 당시 교단은 40세 이하만 선교사로 파송했다. 그때 방 선교사 나이는 38세였다. 선교의 길에 아내도 흔쾌히 동행하기로 했다. 2년간 교단에서 훈련받으면서 선교지 페루에 대한 확신도 커졌다.


“세계 지도를 보세요. 페루가 선교 거점지역인 게 보여요. 리마공항은 전 세계 비행기들이 모이는 교통 요충지예요. 무엇보다 콜롬비아부터 칠레까지 남미 국가들 중 잉카제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페루는 남미 선교의 출발점이라는 뜻이죠.”

리마를 거점으로 인근 산타클라라, 사파얄 등에 교회 4개를 개척했다. 리마와 거리가 먼 지방 도시는 교회 개척을 후원했다. 50개 교회에는 성경 1권에 1달러씩 보급해 성경을 읽게 하는 ‘바이블타임’도 실시했다.

영세민에겐 무료급식을 했고, 페루의 기독인 국회의원이 참석하는 국회·국가기도회도 진행했다.

세월이 흐르고 페루 환경이 달라지면서 사역에도 변화를 줬다.

그는 “거지가 있던 리마공항은 남미의 대표적 공항으로 바뀌었고 치안 상황도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복신앙과 초자연적 능력을 추구하는 페루 사람들 성향에 찬양을 통한 전도방법이 맞았다. 효과도 봤다”면서 “이제 중산층 증가, 의식수준 향상으로 말씀과 교육을 통한 부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방 선교사가 리마 인근 산타클라라에 개척한 교회에서 현지 주민들이 예배하는 모습. 방 선교사 제공

한류 열풍에 맞춰 K팝과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문화원’을 열었다. 방 선교사는 “종교적 색채는 드러내지 않지만 모임은 늘 기도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페루행의 결정적 이유였던 현지 사역자 양성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고신선교비전센터’를 세워 목회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복음화를 위한 평신도 선교사도 키우고 있다. ‘선교문화예술비전센터’에선 선교훈련과 함께 악기 한 가지씩 가르치고 있다.

방 선교사는 페루를 위한 기도제목을 공유했다. 그는 “사회주의 쪽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최근 경제가 성장하면서 사회주의 국가는 되지 않겠지만 정치적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도 했다. “페루는 무속신앙이 뿌리 깊어요. 최근엔 이단도 많이 들어오고. 어느 때보다 기도가 필요할 때입니다.”

페루는 어떤 나라…

“남아메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다. 기원전 900년쯤 인디언 부족들이 다양한 문명을 꽃피웠다. 15세기 무렵 케추아족은 페루와 에콰도르, 칠레, 아르헨티나 등 드넓은 지역에 잉카제국을 세웠다. 농업 기술과 건축술로 놀라운 문명을 이뤘지만 1527년 스페인에 침략당해 300년간 식민지가 됐다. 안데스 산맥의 마추픽추는 잉카제국의 건축술을 볼 수 있고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는 잉카를 무너뜨리고 스페인 사람들이 세운 유럽식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관광을 떠나 페루와 남미 문화를 알려면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봐야 한다.”

-페루에서 조심할 게 있다면.

“페루 사람은 보이면 가져간다. 놀라운 건 페루에선 100달러 아래 돈이나 물건에 대해선 어떤 보상도 없다. 가령 99달러를 훔친 사람을 잡아서 경찰서에 데려가도 풀어준다. 깔끔한 옷차림도 금물이다. 밥값 싸다고 빈곤층 거주지에 가서 먹었다간 속옷까지 벗겨간다. 부유층 거주지에서 비싼 돈 주고 먹는 게 낫다. 납치도 여전히 있다.”

-페루 사역을 생각한다면.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방된 성 문화를 갖고 있다. 문란한 성 문화가 자연스럽다. 잉카시대 종족 보존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해 근친결혼은 제도화됐고 일처다부, 일부다처 문화도 양립한다. 이런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회개 문화도 없다. ‘실수’ ‘용서’라는 단어를 페루 사람들은 피하는데, 잉카문명의 파괴자라 불리는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만든 식민지 문화 때문이다. 당시 피사로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고 용서를 구하면 모두 죽였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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