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한 일상 이야기, 노래가 되고 글이 되다

[창·작·가] 싱어송라이터 겸 작가 이랑

이랑은 3집 ‘늑대가 나타났다’를 사람들이 ‘격정적인 혁명가’로 바라봐주길 바랐다. 이 앨범에선 자신이 보고 들은 사람들의 일상을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담아냈다. 사진은 이랑이 들판에서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바람을 한껏 느끼는 모습. 유어썸머 제공

이랑(35)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다. 삶 속에서 찾은 이야기를 일상의 언어로 노래하고 글로 쓴다. 낮은 목소리지만 울림은 크고 깊다. 김민기 안치환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한다면 이랑의 노래도 들어보라고 하는 이유다.

그는 2017년 2집 타이틀곡 ‘신의 놀이’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상을 받았다. 정병욱 선정위원은 당시 “내밀한 일상의 노랫말이 날카로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이 노래가 증명해준다”고 평가했다.

이랑은 이때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가난한 문화예술인에겐 영광의 트로피도 사치임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그가 지난달 말 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를 내고 ‘이 가난에 대해서 생각해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라며 훅 치고 들어왔다. 가난한 그의 예술과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걸까.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작업실에서 이랑을 만났다. 그는 새 앨범에 관해 “나도 나의 이야기를 할 테니 당신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뜻”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3집 타이틀곡 ‘늑대가 나타났다’는 집회에서 따라부르기 쉬운 행진곡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신의 놀이’가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여성 인권 집회에서 종종 사용됐지만 따라부르기 힘들어 아쉬웠다고 한다.

‘늑대가 나타났다’에선 ‘일하고 걱정하고 노동하고 슬피 울며/ 마음 깊이 웃지 못하는/ 예의 바른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고 노래한 뒤 합창으로 ‘마녀가, 폭도가, 이단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하면 양치기 소년 이야기에 나오는 늑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듣고 나면 노래를 부르는 자신이 늑대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랑은 “나는 ‘배고파요’라고 말한 건데 상대가 ‘늑대가 나타났다’고 받아들일 때 받는 당혹감을 표현했다. 그때의 분노를 담아 ‘너희가 나를 마녀 취급해? 그래, 나 마녀다 어쩔래’라고 외친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노래를 들으면 한 편의 우화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이랑은 노래 제목을 ‘마녀가 나타났다’로 할지 ‘늑대가 나타났다’로 할지 고민한 끝에 ‘늑대’를 선택했다. 트위터로 진행한 투표에선 ‘마녀’에 찬성표를 던진 이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같은 노래라도 ‘마녀’가 제목이 된다면 청취자가 여성으로 한정되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고 한다.

이랑은 자신의 이야기가 2030세대나 여성에게만 소비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하며 살고 핍박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곤 한다. 정당한 요구를 했는데 마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며 “제 노래를 듣는 누구에게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기득권층이라도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이랑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나 자신의 재료로 이야기를 만드는 이야기꾼’이라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랑은 자신의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 뿐만 아니라 글로도 쓴다. 에세이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소설 ‘오리 이름 정하기’ 같은 책은 이렇게 나왔다. 노래와 글을 넘어 자신의 이야기로 영화를 찍고 싶다는 마음도 품고 있다.

그는 “아카데미, 지역문화센터, 학교 등에서 창작 관련 수업을 하며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뭘 가르칠 수 있지’ 고민했는데 제가 창작한 과정을 거꾸로 정리해서 알려주니 창작물이 나왔다”면서 “수강생의 글과 노래를 보고 운 적이 많았는데, 이런 경험이 삶을 노래하는 것으로 연결됐다”고 말했다.

삶과 예술이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은 이랑에게 단단한 뿌리와 같다. 그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제 창작의 원천”이라며 “꼬맹이 때 학교에 갔다 오면 엄마가 듣든지 말든지 식탁에 앉아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기표현을 못 하면 마음의 병이 생기기 쉽다”고 했다.

예술지원사업의 지원 대상 심사를 종종 맡았던 그는 “사람들이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여다볼 기회였다. 예술에 대한 제 생각도 비춰봤다”며 “예술은 일상과 별개라는 분도 있고 예술만 하고 싶은데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삶이 한스럽다고 토로하는 분도 있었다. 어리둥절했다. 저는 예술과 삶이 분리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노랫말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일상에서 나온다. ‘잘 듣고 있어요’에선 노래를 잘 듣고 있다는 팬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반가움을 담았다.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거운 마음을 그렸다. ‘빵을 먹었어’는 종일 집에서 나가지 못해 그날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웠다는 빵을 그린 친구 화가의 이야기다.

그의 노래나 글은 솔직하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다. 이 때문에 미움을 산 적도 있다. 그는 “제가 하는 말이나 노래가 누군가를 공격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남성 혐오라는 이야기도, 반대로 여성운동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때론 공포도 느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언어폭력을 겪다 보면 지나다니는 사람의 눈만 마주쳐도 무서워진다”고 했다. 하지만 “저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들이 지켜줄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다”고 말했다.

이랑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기타를 들고 택시를 자주 타는데 기사 아저씨한테 홍보를 많이 한다. 지역문화센터 수업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오는데 저를 만난 뒤에 제 음악을 들어봤다는 분도 있다”고 했다. 최근 대안학교인 산청간디학교 학생들이 기획한 축제에 초청받은 것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그는 “올해 앨범 발매하고 오프라인으로 처음 노래 부르는 자리였다. 학생들이 저를 불러준 게 신기했고 안전해서 좋았다. 제가 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환대해주고 일일이 인사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자신을 환대하는 이들만 바라보며 안주할 생각은 없다. 그래선 세상의 반쪽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눈과 귀는 늘 열려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다른 목소리를 들으려 애쓴다. 그는 “지금 세상은 충분히 디스토피아지만 인류가 한순간에 멸망하는 게 아니라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싶다”면서 “저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차단하지 않는다. 저와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야 더 유연해질 수 있다. 더 유연한 게 더 단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 제가 나이가 들어도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궁금해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그는 아주 현실적인 당부를 남겼다. “유명해지면 다 해결된다고 하지만, 무급 봉사가 너무 많다. 제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면 응원은 구매로 해달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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