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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머리 나쁜 지하철 행선안내게시기


지난여름 도쿄올림픽 개막식 화제는 픽토그램이었다. 사물이나 시설, 사회적인 행위나 개념 따위를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단순화해 나타낸 그림문자인 픽토그램은 1964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등장했다. 일본도 한자 문화권이라 글자를 읽기 어려운 외국인의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그림문자를 만든 것이다. 근저에는 배려의 행정이 있는 것이다. 57년 만에 다시 도쿄에서 열린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은 픽토그램 퍼포먼스를 펼침으로써 자부심을 드러냈다. 자랑할 만하다. 도시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정보의 간소화, 명료화, 시각화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간명한 정보 전달은 대중교통에서도 꼭 필요하다. 우리 지하철은 어떤가. 서울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간혹 진공 상태에 빠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책을 읽든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든 뭔가에 몰두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다. ‘이번 역은 어디지?’ 내릴 역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수 초(秒) 사이에 상황 파악을 해야 하지만, 도무지 불가능할 때가 있다.

물론 전동차 내부에는 LED 스크린(행선안내게시기)이 있다. 이를 통해 다음 정차역 등 행선지 정보가 끊임없이 나온다. 문제는 정보의 표시 방식이다. 도무지 이용객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으로 치면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지능이 떨어진다.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자세히 살펴봤다. 스크린에 표시되는 정보의 순서는 이랬다. ‘이번 역은’ ‘잠실나루’ ‘내리실 문은 오른쪽’ 등 각각의 문장이 한글과 영어로 차례대로 뜬다. 이어 승객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인 ‘외선순환(Outer Circle Line)’이 각각 한글과 영어로 또 순서대로 나온다. ‘친절하게도’ 두어 번씩 깜박거린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정차 역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에는 엉뚱하게 ‘외선순환’ ‘Outer Circle Line’이 깜박거린다. 제때 필요한 정보를 알 수 없는 시차 괴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스크린은 두 부분으로 구획돼 상단 5분의 4에 공익광고를, 하단 5분의 1에 행선지 정보를 제공한다. 그 옹색한 공간에 행선지 정보를 제공하다 보니 줄줄이 나열식이 되는 것이다. 효과도 없는 공익광고는 빼야 한다. 스크린 전체를 다 사용하면 다음 정차역, 가는 방향, 문이 열리는 위치 등을 한번에 스마트하게 표시할 수 있다. 몇 년 전 스위스에서 시내버스를 탔는데, 스크린에 앞뒤 3∼4개 정차 역을 표시함으로써 한눈에 시각화한 걸 본 적이 있다. 문이 열리는 위치도 굳이 ‘오른쪽’ ‘왼쪽’이란 말로 표시하지 않고도 화살표 방향으로 표시하면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다행히 이런 식의 개선이 2호선 일부 새 전동차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3호선 일부 전동차 안에는 숫제 정차 역, 운행 방향 등에 관해 알려주는 스크린이 없다. 스크린이 있긴 하지만 여기에는 마스크 착용을 당부하는 내용 등 공익 광고만 계속 뜬다. 그 자잘한 글씨의 광고에 눈길을 주는 시민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다음 중 임산부를 골라 주세요?’라는 퀴즈 문제도 스크린에 나온다. 임산부 자리 양보 캠페인을 저런 식으로밖에 하지 못하나,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그러면서 ‘역세권 오피스텔 분양’이라고 큼지막한 글씨로 쓴 상업 광고 스크린은 크게 매달았다. 내릴 역에 대한 정보는 오로지 방송 안내를 귀담아듣는 수밖에 없다. 낯선 도시에 온 것도 아닌데, 안내 방송을 계속 긴장해 들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오죽했으면 하차 역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까지 등장했겠나. 호선에 따라 코레일이 함께 운영한다고 하지만 최종 책임은 서울교통공사에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무능력, 무관심, 무책임을 보는 거 같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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