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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명절을 지키는 두 가지 방법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곧 추석이다. 그러나 코로나 블루로 흥이 나지 않는다.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이처럼 기쁘기만 하지는 않은 상황에서 과연 ‘기독교인에게 명절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지키는 것이 바람직할까’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져보자.

종교에는 일반적으로 ‘거룩함’의 개념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절대조건인 공간과 시간을 거룩함과 연결한다. 여기서 비롯된 개념이 바로 성지(聖地)와 성시(聖時)다. 물론 어느 곳 하나 어느 순간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렇게 구분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보는 것이다. 원래 거룩함의 의미 가운데 하나가 구분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경우 종파에 따라 성지와 성시를 모두 중시하기도 하고, 성시만 중시하기도 하고, 혹은 아예 성시조차 중시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성시를 중시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용어로 교회력이다. 성시를 중시할 때도 적극적인 경우와 소극적인 경우가 있다. 적극적인 경우는 절기가 일년 내내 비는 날이 없고 심지어 중복되기까지 해서 때때로 덜어내고 새로 채운다. 반대로 소극적인 경우는 주일 이외에 일절 다른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 중도적 입장 가운데도 지키는 절기의 수는 차이가 나지만, 대개 성경에 나오는 절기인 소위 ‘복음적 절기(evangelical feast)’라는 5가지를 지킨다. 곧 성탄절, 성금요일, 부활절, 승천일, 오순절이다.

기독교는 탄생 이후 기독교 나름의 교회력을 만들어 왔다. 그 과정은 기본적으로 성경에 기초해 이뤄졌는데, 구약 전통도 일부 창조적으로 수용했다. 이스라엘도 고유의 절기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3가지로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이다. 그중에서 유월절은 성금요일 및 부활절과 연결되고, 칠칠절은 오순절과 연결이 된다. 그런데 장막절은 기독교 내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했다. 유대교의 절기에는 생활적 측면과 종교적 측면의 양면이 있다. 유월절은 새해의 시작인데 구원의 시작 곧 이스라엘 백성의 탄생과 연결된다. 칠칠절은 첫 추수(육의 양식)인데 율법 수여(영의 양식) 곧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장막절은 본격적 추수인데 광야 체험 곧 이스라엘 백성의 형성 과정과 연결된다. 마침 장막절이 우리나라 추석과 의미상으로나 시기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장막절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살펴보자.

유대인들은 장막절에 집 마당에 초막을 짓고, 절기 동안 초막에서 하나님 말씀 읽기와 식사를 한다. 광야 생활 곧 인생의 고통을 기억하는 기간으로 삼는다. 가나안의 안정된 삶은 광야의 불안한 삶을 거쳐 비로소 도달할 수 있었음을 상기하는 것이다. 더구나 한 구약학자가 상기시켜줬듯이, 장막절에 읽는 하나님 말씀이 바로 전도서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는 구절로 유명한 책이다.

유대인은 5대 절기마다 각 절기에 맞는 성경을 읽는데, 인생의 가장 풍요로운 순간에 인생의 부질없음을 토로하는 전도서를 읽다니, 아이러니하지만 그 의미가 깊어 음미할 만하다. 편안한 가운데 불편함을 기억하고, 행복한 가운데 불행을 생각하는 지혜를 추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번 추석이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면, 장막절의 이중적 의미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삼을 수는 없을까. 우울한 명절에는 명절의 밝은 면을 기억하고, 기쁜 명절에는 명절의 어두운 면을 기억하는 것. 이렇듯 명절을 지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부언한다면 장막절 곧 수확의 절기는 교회력에 정착되지 않았는데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면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들 수 있다. 한국은 미국 기독교 영향으로 추수감사절을 도입하다 보니 추석과 동떨어진 11월에 지킨다. 장차 의미에 맞게 시기를 조정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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