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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이런 대선판에 국민은 하나둘 스러진다

손병호 논설위원


독일이 26일 총선을 치른다. 선거가 열흘도 안 남았지만 아직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한다. 부동층이 역대 최고치여서다. 현지 매체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지난 1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유권자들 가운데 40%가 아직 어느 당을 찍을지 정하지 못했다. 총선을 통해 앙겔라 메르켈의 바통을 이어받을 총리를 뽑아야 하는데 유권자들이 메르켈을 대체할 만한 인물을 아직도 고르지 못한 것이다. 총리를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많은 유권자들은 여전히 그들이 총리감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 사정도 독일과 비슷하다. 최근 한국갤럽이 대선 6개월 전의 부동층 비율을 조사했는데 응답자의 32%가 아직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역대 최고치다. 이전 대선 때 6개월 전 부동층 비율은 2017년 17%, 2012년 22%, 2007년 17.5%였다. 부동층이 급증한 건 그만큼 지금 돌아가는 대선판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네거티브만 넘치니 정치혐오증이 커졌거나, 후보가 있어도 자질이 의심스러워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 요즘 대선판을 보면 부동층이 32%밖에 안 된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0일 발표한 여야 주자 4명에 대한 호감도 조사를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호감이 간다’와 ‘가지 않는다’가 각각 40%, 50%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29%, 58%), 이낙연 전 의원(24%, 62%), 최재형 전 감사원장(17%, 58%) 도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우리는 지금 호감도가 더 높은 후보가 단 한 명도 없는 대선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를 하면 어쨌든 지지율 1위 후보도 나오고, 2위 후보도 나오지만 국민 전체를 놓고 봤을 땐 다들 비호감 주자들인 셈이다.

이대로라면 유권자들이 불행한 투표를 해야 할 공산이 크다. 진짜 마음에 들고 꼭 찍고 싶어 투표한다기보다는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투표할 후보가 마음에 들어 찍기보다는 상대 후보가 정말 미워서 그 사람만큼은 당선 안 되게 하려고 억지로 다른 사람을 찍을 공산이 크다. 미래를 맡길 사람을 뽑는 선거인데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한국어판이 나온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 ‘약속의 땅’에서 부러운 마음으로 읽은 대목이 있다. 그가 2008년 대선 후보 시절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군중에 휩싸여 유세를 하다 느낀 것을 적은 것인데, ‘나는 실제보다 과장된 희망의 상징이자 수백만 가지 꿈이 담긴 그릇이 되었다. 지지자들을 실망시킬 때가 오지 않을까 두려웠다’는 대목이다. 첫 흑인 대통령이자 존 F 케네디 이후 근 50년 만에 나타날 40대 대통령, 오바마케어를 비롯해 하루하루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리더, 부시행정부의 실정(失政)에 종지부를 찍는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많은 국민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담아 지지했던 후보가 바로 오바마였다. 그리고 그 후보는 매일매일 국민들의 꿈과 희망의 무게를 두려워하며 선거에 임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대선에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실을 후보를 찾은 유권자들이 얼마나 될까. 설령 지지하는 후보라 해도 꿈과 희망까지 싣고 싶을까. 그가 내 삶을 달라지게 해주리란 확신이 있을까. 정작 그 후보는 그런 것을 담아낼 그릇은 될까. 그런 대신 아마 많은 유권자들이 차라리 지금이라도 제3의 후보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클지 모른다.

대선이 6개월도 채 안 남았다. 그런데도 선거전이 지금처럼 과거 공방과 난타전으로만 흘러가선 안 된다. 검증은 필요하지만 그렇더라도 과거 일을 들추고 그걸 해명하고 한참 공방을 주고받다 또 다른 네거티브로 역공을 펼치는 데 온 에너지를 허비하는 대선이어선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소시민들이 지금의 어려움에 절망하지 않고 꿈과 희망을 품고 새로운 미래가 올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게 해주는 그런 대선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설령 공약(空約)이고 정치적 야바위라 하더라도 차라리 국민을 절망케 하는 대선보다야 낫다. 지금같은 난타전만 있는 대선을 치르는 사이 국민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시나브로 스러지고 있다. 후보나 각 캠프, 여야 정당들이 이제라도 국민들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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